나의 다른 이름들/ 조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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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1-20 14:49 조회3,171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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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다른 이름들
조 용 미
페르난두 페소아는 알베르투 카에이로이자 리카르두 레이스이고, 알바루 데 캄푸스이다
그의 이름은 수십 개, 이들은 이명동인이지만 또한 이명이인이고자 한다
나는 어디까지 나일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나임을 증명할 수 있으며 어느 순간 나의 다른 얼굴을 드러내어서는 안 되는가
나는 내가 아닐 수 있는 가능성으로 똘똘 뭉친 이 진실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한순간 전의 내가 한순간 후의 내가 아님을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내가 내가 아님을 완벽하게 실현하는 일은 무척이나 고독한 일
나의 삶을 살다가 또 다른 나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은 치밀한 환상이 필요한 일
내가 죽기 전에 다른 나의 죽음을 목도해야 하는 일은 정교한 시간 배치가 필요한 일
나는 왜 시종일관 오로지 나 자신이어야만 하나
오늘도 내 속에 적절히 숨어서 내가 아닐 가능성을 엄밀하게 엿본다
진정 나는 그였으며 그는 다른 나였을까
나는 내가 아닐 수 있는 가능성으로 똘똘 뭉친 이 진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조 용 미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기억의 행성』,
『나의 다른 이름들』과
산문집 『섬에서 보낸 백 년』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