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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집 딸-유영금/ 김인희의 시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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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6-26 16:40 조회3,45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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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불집 딸

1.

일곱살 때 해지는 툇마루, 무명저고리 깃이 젓도록 우는 어머니가 살았다. 우물가에 쪼그려 하모니카를

불다 훔쳐보면 어머니는 허리 굽혀 마당의 분꽃을 손질하는 척했다 하모니카를 우물 속에 집어던졌다 

아버지가 오면 사립문을 걸어 잠그자고 나팔고개에 내려온 별과 약속했다 분꽃이 마구 지고 찰강냉이 수

염이 병들면 나팔고개 내리막길 아버지 흰머리가 보였다 아버지를 보는 순간, 산비탈이 강냉이보다 더

노랗게 흔들렸다 아버지가 돌아온 밤, 매 맞는 어머니 피울음이 문풍지를 찢고 흘렀다 굴뚝 뒤에 숨어

오들오들 떨다 댓돌 위 검정고무신 안에 돌멩이를 꽉꽉 쑤셔넣었다 마루 및 숨죽인 무당거미 등줄기에

소름이 바작바작 돋았다 어머니는 분꽃보다 예뻤는데 아버지가 그리워 날마다 울었는데 사기호롱이 산

산조각 나고 나팔고개 오르막길로 아버지는 사라졌다 시든 분꽃처럼 구부러져 누운 어머니에게 아버지

를 죽여 버리자 했다 잠든 척하는 어머니 멍든 등에 꽃 수술을 꺾어 아버지 같은 남자를 만나지 않을 거

라 일기를 썼다

 

2.

검정 고무신이 놓여 있지 않은 댓돌은 불안하지 않아 슬펐다 무당거미 신들려 춤추는 새벽, 슬픔으로 닦

아낸 빈 항아리에 우물 속 출렁이는 별을 길어 쏟아 부었다 별 동동 뜨는 두레박 물을 마시면 하모니카

울음소리를 내는 별들이 허기진 입안을 동글동글 굴러다녔다 달그락 아버지 숟가락 소리도 들려왔다 어

머니는 가마솥 뜨거운 별밥을 풀 때마다 고봉 한 그릇을 부뚜막 가장자리에 놓아두곤 했다 호롱불 심지

가 가물거리도록 그리움을 깁던 어머니 한숨이 잠들면 밥주발 위에 마른 행주를 덮어두었다

 

3.

사십년 전 새벽 나팔고개로 사라진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아버지 마을 분꽃은 아직도 저녁에 우나요

길고 노란 꽃술을 똑똑 분질러 어머니 등에 썼던 일기는 파지예요

한 사내도 꼭 아버지처럼 사라졌거든요

별밥을 짓지는 않아요 아버지는 오지 않았거든요

두레박도 내리지 않아요 우물이 말라버렸거든요

아버지가 가르친 분꽃 우는 저녁은 나침반이예요

손에 꼭 쥐어 준 일곱 살 적 그것을 버리지 않을게요

 

 

시 감상

  

새로운 여자, 딸 

유영금 시인의 시집을 읽고 나서 나의 머릿속에는 고통스러운 수묵화 한 장이 남겨졌다. 어둡고 음습하고 차거운, 시간을 뛰어 넘은 그 공간에 두 여자, 시인의 어머니와 그녀의 딸 유영금 시인이 겹쳐져 있는 그림이다.

그녀들은 본시 하나였다. 남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에게 짓밟힌 공통의 기억을 가진 그녀들은 본시 머리는 하나이며 몸은 둘로 구성된 인물이다. 짓밟힌 그녀들에게 무기가 있다면 ‘봉숭아 꽃물을 들인 손톱’이었을까? 어두운 수묵화에 괴이하게도 손톱 끝에만 붉은 색이 입혀져 있는 것이다.

근원적으로 「어머니」는 찢어지고 황폐해 짐으로써만 「아들」을 키워 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새로운 여자, 딸」에 닿을 수 있다. 유영금의 시집에는 아직「새로운 여자, 딸」이 나타나 있지 않다. 그녀 시집의 첫 번째 시와 마지막 시를 연결시켜 보면 ‘지글 지글 타는 두개골’-모든 기억을 태워버리고, ‘나도 꽃으로 죽도록 피고 싶다’는 희망을 내보이고 있다. 즉 사내에게 찢겨져 「너덜너덜한 어머니」는 태워버리고 「새로운 여자, 딸」이 되어 마음껏, 죽도록 하늘 한 귀퉁이에 꽃으로 피고 싶은 것이다

「아버지」는 그 모녀를 분리시켜 「새로운 여자, 딸」에 닿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나침반’ 즉, 힘 혹은 법칙이다. 하여 나팔고개 밑 산골마을의 신화는 새벽 우물에 다시 별이 뜨고, 별이 뜬 물을 길어 올려 흰 밥을 짓고, 세상의 새로운 가족들에게 고봉의 흰밥을 퍼주는 젊은 엄마가 살고 있는 것으로 재구성 될 것이다.  -글. 김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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