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 가에서 나는 울었네/ 시-지인, 시해석-김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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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6-26 15:31 조회3,110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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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 가에서 나는 울었네
지인
어느 날 내가 된 그를 찾아 해메다가
신발을 벗고 강을 건너
테화강 기슭의 암각화를 보게 되었다
누가 이 바위에 그림을 새겼을까
이상한 암호들과 그림을 더듬어 가니
암호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내 몸 안에 있어
손끝으로 전율이 전해졌다
순간 그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며
천둥번개가 치며 소나기가 쏟아졌다
바위에 새겨놓은 원형과 곡선, 동심원
새와 물고기, 고래, 사슴, 남근을 그린
그의 붉은 피가 내 몸 속에도 흘러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태화강 가에서 나는 울었네(지인 시집 『여우비』 중에서 P.42)
시해석
글 김인희
앞의 시를 집단언어 "점으로 이어진 두 개의 원"으로 보았다. 기본적인 내용은 "그의 안으로 들어가 앉은 나/ 그의 가슴 안에 나의 집을 짓는다/ 알끈을 통해 계속 내 먹이가 되는 그이" 라는 인류공통의 기억을 표시한 집단언어이다.
앞의 시에는 "천둥번개가 치며"가 있고, "그의 붉은 피가 내 몸 속에도 흘러/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는 부분이 있다.
앞의 도형 속의 붉은 부분은 대폭발의 자리이며, 거기서 흘러 나오는 붉은 선은 재생된 새로운 에너지이다. "그"를 찾아 나섰는데 성공하여 그의 붉은 피가 몸 속으로 들어왔으니 무의식계에서 대변화가 일어나고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받게 된 것이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시이다. 우리나라에서 흔치않은 시작업을 하는 시인이다. 모더니즘 계열의 시가 온갖 응석들을 부리며 어떤 대안제시도 않은 채 아픔을 꺼내 나열만 하는 것에 비해 얼마나 머리가 맑아지고 상쾌한가. 시인이 의도했던 안했든 인류의 미래를 기하학적으로 분석하여 아름다운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성공한 작품이라고 보여진다.
'그' 가 사는 무의식계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신발’을 벗고 강을 건넌다. 해석하면 무의식계로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그 곳엔 운동이 없는 곳이니 당연히 발이 없고 발이 없는 곳이니 신발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신발을 벗고 의식계의 강을 건너 무의식계로 넘어간 ‘나’는 「이상한 암호들과 그림」을 더듬어’간다. 운동이 없으니 변화가 있을 리 없는 무의식계를 상징하는 바위에는 ‘그’의 ‘붉은 피’를 상징하는 ‘원형과 곡선, 동심원, 새와 물고기...’등이 그려져 있다. 그것을 만나 ‘나’의 몸속에 ‘그’의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내가 된 그를 찾았’으니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나’는 다시 의식계로 되돌아오기 위해 ‘신발’을 신는다.
‘내가 된 그’는 누구일까. 필자의 해석으로 ‘그’는 레비 스트로스의 기본적 가족구조 「아버지와 어머니 그들의 아이들」에서 아버지에 해당하는 무의식계적 인물이다. 이 기본적 가족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아버지’는 세계라는 에너지의 덩어리를 지인의 앞 시편에서처럼 기하도형들에 의해 운행시킨다. 세계는 아버지 자체이므로 기하도형들을 ‘그’의 피로 읽은 시인의 시적 직관은 예리하다.
시인이 그러한 세계적 집단자아와의 동일화를 순간적이나마 맛보았다는 것은 시인이 눈물 흘릴만큼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이라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시해석『여황의 슬픔』참조, 저자 김인희 19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