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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자 차/ 박미라-시감상, 김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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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6-26 15:29 조회3,334회

본문

연자 차

​     박미라

 

살얼음 낀 방죽에서 연밥을 딴다

 

씨방의 껍질을 찢고

그 안의 씨앗을 다시 깨뜨려

살점을 가르면

태아처럼 웅크린 꽃눈 


천천히 고요해지는 찻물을 따른다

찻잔가득 번지는 저 색깔을 무어라 해야 하나

연잎에 구르던 빗방울이, 꽃잎에 쌓였던 달빛이,

조금씩 덜어두고 간 입김 따위로 빚어진

아직은 흑백인 우주

곰곰이 들여다보면

지금 막 초록으로 건너가려던 중인 걸 알겠다

자꾸 수그러지는 머리를 흔들며

다시 찻물을 따른다

툭툭 튼 입술을 마른 땅 밟듯 지나서

뻘밭 속으로 몸을 옮기는

내 몸의 다음 생

 

 

감상평

세상의 희노애락을 모두 밟고 몸소 체험하여 우주라는 무의식계. 시간을 한 바퀴 휘돌아 온 시인은 지금 연밥을 따기 위해 살얼음 낀 방죽에 서 있다. 연밥은 그냥 연밥이 아니라 “뻘밭”에 비유되는 “다음 생”을 이미 돌아 건너 온 연밥이다.

우주를 기하학적으로 해석해 보면 이 시인의 우주에서 ‘꽃눈’과 ‘씨방’과 ‘씨앗의 껍질’은 ‘초록’이라는 생명으로 다시 건너가기 위한 장치이며 다리이다. 따라서 시인의 ‘다음 생’은 꽃눈을 다시 틔우는 일과 같다. 그러고 보면 우주의 전체거리는 그저 씨앗에서부터 다시 꽃눈을 튀우는 데 까지이다.

그런 연밥을 따는 시인이라면 여신의 지위와 다를 것이 무엇이랴? 그녀가 입은 옷은 분명 여사제가 입은 눈부신 흰 옷일 것이다. 시간의 구석구석을 방황하는 동안 여신의 옷은 검정색, 붉은색, 자주색, 보라색 등이었겠지만...가끔 연분홍도 있었을까?

시간의 완주를 끝내고 이제 살얼음 낀 방죽에 서 있는 그녀는 ‘신전의 문이 열리’는 것을 체험하였고, 그 신전의 주인 ‘유일신’과 같은 위치에 거하는 의식적 체험을 하였으므로 그녀는 이제 다시 완전한 인간으로 하강하기는 아마도 힘들 것이다. -그녀에게서 인간에 대한 연민의 깊이를 이제는 다시 덜어내지 못하리.

“연 잎에 구르던 빗방울이/꽃잎에 쌓였던 달빛이/조금씩 덜어두고 간 입김 따위로 빚어진/아직은 흑백인 우주” 그 시간의 처음 자리에서 시인은 집도의처럼 이미 “뻘밭”의 한 생애를 건너온, 그래서 그 진창의, 오욕의 삶이 모두 입력되었음에도 순수하기 그지없는 “태아처럼 웅크린 꽃눈” 그 시간의 처음자리에 찻물을 따른다. 시인이 옷자락을 펄럭일 때마다 그녀의 옷자락에선 “아득한 향기”가 세상으로 번져 나갈 것이다. “꽃눈”은 사실 시인 자신의 시적자아의 재구성이었으니.   -글. 김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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