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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빛 저녁볕 외 2편 / 이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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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1-30 21:21 조회3,469회

본문

삼베빛 저녁볕 외 2편

 

이은봉 

 

삼베빛 저녁볕, 자꾸만 뒷덜미 잡아당긴다

어지럽다 아랫도리 갑자기 후들거린다

종아리에 힘 모으고 겨우겨우 버티고 선 채

흐르는 강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산언덕을 덮고 있는 조팝꽃처럼

마음 몽롱해진다 낡은 철다리조차

꽃무더기 함부로 토해 놓는 곳

간이매점 대나무 평상 위 털썩, 주저앉는다

싸구려 비스킷 조각조각 떼어먹으며

따스한 캔 커피 질금질금 잘라 마신다

초록 잎새들, 팔랑대는 저 아기 손바닥들

바람 데려와 코끝 문질러댄다

쿨룩쿨룩, 삼베빛 저녁볕 잔기침하는 사이

강마을 가득 들뜬 발자국들 일어선다

싸하게 몸 흔들며 피어오르는 철쭉꽃들

벌써 물속의 제 그림자 까맣게 지우고 있다.

 

 

접는 의자

 

 

아무데나 불쑥 제 푹신한 엉덩이 내밀어

사람들의 엉덩이 편안하게 들어앉히는 접는 의자!

 

사람들의 엉덩이 앉았다 떠날 때마다

접는 의자의 엉덩이 반질반질 닦여진다

 

사람들 다 돌아가고 나면 엉덩이 들이밀고

사무실 한 구석에 우두커니 기대 서 있는 접는 의자!

 

더는 아무데나 함부로 엉덩이 내밀 수 없어

세상 어디에도 그에게는 제자리가 없다

 

제자리 없어 더욱 마음 편한 접는 의자!

엉덩이 폈다 접으며 그는 하늘에 가 닿는다.

 

 

빨래하는 맨드라미

 

 

담벼락 밑 수돗가에 앉아

맨드라미, 옷가지 빨고 있다 지난여름

태풍 매미에 허리 꺾인 어머니

반쯤 구부러진 몸으로

여우비 맞고 있다 도무지 세상 물정

모르는 이 집 장남

그러려니 떠받들고 살아온

맨드라미, 텃밭이라도 매는 자세로

시든 살갗 쪼그라든 젖가슴

얼굴 가득 검버섯 피워 올리고 있다

톡톡 터져 오르는 큰자식의 마음

비누질해 빨고 있다 어머니

가는 팔뚝, 깡마른 종아리

비 젖어 후줄근해진 몸으로

이 집 장남의 지저분한 아랫도리

땅땅, 방망이 두드려 빨고 있다.

 

 

 이은봉(李殷鳳): 1953년 충남 공주(현, 세종시)에서 태어나 숭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삶의 문학》 제5집에 「시와 상실의식 혹은 근대화」를 발표하면서 평론가로 등단했고, 1984년 《창작과비평》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에 「좋은 세상」외 6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좋은 세상』, 『봄 여름 가을 겨울』, 『절망은 어깨동무를 하고』, 『무엇이 너를 키우니』,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 『길은 당나귀를 타고』, 『책바위』, 『첫눈 아침』, 『걸레옷을 입은 구름』, 『봄바람, 은여우』 등이 있고, 시조집으로 『분청사기 파편들에 대한 단상』, 평론집으로 『실사구시의 시학』, 『진실의 시학』, 『시와 생태적 상상력』, 등이 있으며, 연구서로 『한국현대사의 현실인식』 등이 있다. 한성기 문학상, 유심 작품상, 한남문인상, 충남시인협회상, 가톨릭 문학상, 질마재 문학상, 송수권 문학상, 시와시학상 등을 수상했고, 현재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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