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서/ 자각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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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2-14 05:39 조회3,782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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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몽
김명서
새벽은 기도가 잘 통하는 시간
선잠의 끝에 매달린 카나리아
꿈의 변곡점을 넘나들며 D단조의 현을 누른다
저음과 고음이 한꺼번에 울린다
책에서 도망친 ‘좀머 씨’는 헐레벌떡 샛길로 접어든다
국경은 봉쇄되고
병원은 폭격을 피해 지하로 숨어든다
램프 하나 가슴을 두드리며 병실을 지킨다
하루에 만 명이 죽고, 삼천 명이 난민이 되고
카나리아가 쉬지 않고 우는 것이나, 좀머 씨가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나
불안을 잊기 위해서다
사제들은 들메끈을 고쳐 매고 성배를 찾아 순례길에 오르는데
감람나무 그늘 밑에 난장이 열린다
방언들이 난장을 누비고
반군들은 겁먹은 소녀들을 사고팔고 있다
앞을 가로막는 폭음을 걷어내며
모퉁이를 돌아가는데
저 멀리 노을이 타고 있다
신경이 과민해진 꿈이 꿈을 하나씩 넘기며 꿈을 벗어나려 해도 꿈속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꿈을 접어 서랍에 넣어두고
전등 스위치를 내린다
천장에 뿌리내린 야광별 부르르 떨고 있다
뿔을 세운 짐승이 이불 속을 파고든다
굶주린 눈빛이다
가위 눌린 집
벽난로는 식어있고
무너진 담장은 눈치 없이 넝쿨장미를 피워 올린다.
김명서
2002년 <시사사> 등단
2016년 『야만의 사육제』
2016년 <세종문학나눔우수도서> 선정
2016년 <시사사작품상> 수상
『시와편견』 편집주간
『k-poem』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