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서/ 위자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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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2-14 05:32 조회3,755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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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자보드
김명서
나는 몇 달치의 노역을 지불하고
어린 새를 사들였다
새가 틀어박힌 거울에서 밤새 울음이 흘러나왔다
그리움이 늑골에 잔뿌리를 내렸다
모성을 찾아서
검은 숲으로 날아가 버렸다
거울에 손을 얹어놓는다
흐릿한 이미지가 전부일 뿐
궁금한 장면에 대해
‘잃어버린 시간들’이라 썼다가 지우고 ‘사랑했던 시간들’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사랑하는 시간들’이라고 쓴다
사랑은 완성되어가는 것이지 완성된 것은 아니라 사랑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그것은 ‘잔인한’이라는 것이다
식욕을 잃은 채
어둠을 지배하는 악령의 지시를 따르듯 촛불을 켜고
흰 종이에 말판을 그린다
Yes, No
동서남북 사방위에 쓰고
“나는 당신의 친구이며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주문을 건다
빨간 펜이 잠든 혼령을 더듬거리더니
No 쪽에 멈춘다
말판이 부들부들 떨고 있다
여기서 게임을 끝내면 내가 다치거나 주변사람이 다친다
촛불이 잡목 쪽으로 기울어진다
악령과 소통이 된다는 신호일 것이다.
김명서
2002년 <시사사> 등단
2016년 『야만의 사육제』
2016년 <세종문학나눔우수도서> 선정
2016년 <시사사작품상> 수상
『시와편견』 편집주간
『k-poem』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