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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연인/ 김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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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1-18 12:12 조회4,504회

본문

모래의 연인

  

                          김은상

    

 

누군가 바닷가에 모래의 여자를 빚어두었네.

달빛에 비친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 남자 여자 곁에 누워 피리를 불었네.

남자는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행복하였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집을 짓고

여자와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웃고 떠드는 풍경

피리의 선율로 그려내고 있었네.

파도는 남자의 피리 소리가 고와서 살며시

먼 바다의 미풍 속에 담아 간직하였네. 따뜻하고

포근한 숨결, 여자도 그런 남자의 마음 싫지 않아

온 힘 다해 무너지지 않으려 애를 썼네.

어느새 다가온 물결이 남자의 발끝을 물었네.

깜짝 놀란 남자의 얼굴 별빛으로 글썽이었네.

남자는 여자가 누워 있는 쪽으로 커다랗고

깊은 구덩이를 파 자신이 누울 자릴 만들었네.

물결이 여자의 머리칼을 다 씻길 때쯤

남자는 겨우, 여자와 한 몸으로 잠들 수 있었네.

파랑의 속살거림 속에 자신이 그리다 만

한 세계를 그려 넣고 있었네. 여자와 아이들이

다리를 저는 남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네,

손에 물고기 몇 마리를 든 남자의 검게 그을린 목에

코흘리개 아이들이 달려와 매달리었네. 남자는

여자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미소를 보였네.

고래의 숨소리가 남자와 여자를 품어주었네.

바람이 피리 소리로 찰랑거리는 해안,

누군가 모래로 여자의 형상을 빚고 있었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눈을 감아버린 태초의 기울기가 있었네.

김은상


1975년 전라남도 담양출생

2000년 실천문학 등단

2013년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수상​

2017년 시집 『유다목음』(《한국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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