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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등을 떠밀다 외 3편 / 맹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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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1-03 15:22 조회4,017회

본문

하느님의 등을 떠밀다 

 

                        맹문재

 

 

열한 살 아이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는 아득한 길 위에 서 있었다

손사래에서 포옹까지

불안에서 왕성한 웃음까지

아랑곳없음에서 다행까지

나 혼자 걷기에는 너무 멀다고 느꼈다

한마디가 운명을 되돌릴 수 있고

한손이 운명을 붙잡을 수 있겠지만

질서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의 엄마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을

이모가 뒤따르는 것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달려가는 것을

삼촌이 파고드는 것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먼 길에 그림자가 되어달라고

실직자인 고모도

고모가 들고 다니던 도시락 가방도

가방에 붙은 가냘픈 벚꽃도

벚꽃 둘레에서 부산을 떨고 있는 벌들도

수술실에 밀어 넣었다

벌들을 품은 하늘도

하늘의 옷을 입고 있는 하느님도

돌다리 앞에서 등을 보이고 있는 부처님도 떠밀었다

 

 

    

  

어머니를 울리다

 

      

이모님 댁에 왔다가 시골로 가시려는 어머니를 붙들었지만

상 한번 차리지 못했다

백년 만에 처음이라고 텔레비전이 떠들어대듯

눈이 너무 오기도 했지만

직장 일을 핑계로 늦게 들어오느라고

외식 한번 못했다

그렇지만 제대로 씻지 않는다고

공부를 안 한다고

아이들 야단치는 일은 빠트리지 않았다 

씀씀이가 헤프다고

아내를 탓하는 버릇도 숨기지 않았다 

뛰는 집값이며 

노동자를 패는 경찰들을 욕하느라고

집안을 긴장시켰다

어머니가 얼른 내려가고 싶다고 할 때마다

동네 사람들이 아들 흉본다고

붙들어 놓고도 설쳐댔다

하루 종일 양계장의 닭처럼 갇혀 있던 어머니가

새우잠을 자는 밤

어디선가 청개구리 울음이 들렸다

 

 

    

 

아버지가 이르신다

 

      

마을 이장이 농자금 추천을 자기편 사람들만 한다고 이르신다

중풍 때문인지 손발이 뻣뻣하다고 이르신다

시제가 제대로 안 된다고 이르신다

다 캐지 않은 도라지 밭을 땅 주인이 갈아엎었다고 이르신다

올해는 감나무가 시원찮다고 이르신다

날이 가물어 큰일이라고 이르신다

길가의 매운탕집이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 잘 수 없다고 이르신다

민박집들이 오물을 개울에 흘려보낸다고 이르신다

키우던 개가 잘못 먹어 죽었다고 이르신다

시장 사람들이 중국산 마늘을 국산으로 속여 판다고 이르신다

벌레 때문에 고추 농사가 어렵다고 이르신다

울산 조카가 작업반장한테 맞아 목을 다쳤다고 이르신다

농협장 선거에 돈이 뿌려진다고 이르신다

기름 값이 너무 비싸 보일러를 뜯어야겠다고 이르신다

영달네가 자식놈에게 맞았다고 이르신다

내가 쉬는 일요일 저녁에 이르신다

엊그제 이른 일을 또 이르신다

여든 살 아이가 되어 큰아들에게 이르신다

 

 

 
   

 맹문재

1991문학정신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

 『사과를 내밀다

 『기룬 어린 양들

  시론 및 평론집

한국 민중시 문학사

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

지식인 시의 대상애

현대시의 성숙과 지향

시학의 변주』『만인보의 시학

여성시의 대문자

여성성의 시론등 있음

  현재 안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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