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聖所)/ 김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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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1-18 12:18 조회4,423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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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聖所)
김은상
취한 듯이 사랑했고 꿈꾸듯이 이별하였다.
사랑이란 당신과
내가 간직한
신(神)을 나누는 일,
저녁에 이별하고 간(肝)을 잃었다.
술에 취해 누운 정오의
공원을 활공하는
나비,
나아비….
아름답게
떠오른 공중,
비틀거렸다.
떠나간 연인을 잊지 못하는 자들에게
봄만큼 끔찍한 계절이 있을까.
저주처럼
드넓고
욕설처럼
맑은 하늘,
세상은 늘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랑에게 순교할 수 있는 사람은
꼭 사랑이 아니어도 죽을 수 있다.
신앙을 위해 몇 번의 혈서를 쓰고도
배교(背敎)를 선택했던 것처럼,
피는 극지(極地)에서 극지로 흘러갔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세계를 향해
시끄럽게 물수제비를 뜨는 새떼들의 성소,
어린 양(羊)이 울고 있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야 했다.
김은상
1975년 전라남도 담양출생
2000년 실천문학 등단
2013년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수상
2017년 시집 『유다목음』(《한국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