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뒤뜰-함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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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6-26 15:31 조회4,229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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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 뒤뜰 같다 그녀의 등은
바람이 찬 손으로 굽은 등뼈에 쌓인 눈과 시간을 쓸고 간다
나부끼는 흰 머릿결, 공중엔 누군가 뱉어놓은
석탄 같은 멍 덩어리들이 떠 있고
혼자 계단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처럼
처마끝 풍경이 운다
나이테 물결을 그리며 둥글게 둥글게 하늘로 퍼져가는 울음
죽은 자의 눈꺼풀을 내려주듯 함박눈이 내리고
남편이 잠든 오동나무 관 뽀얀 살결을 어루만지다
그녀는 가만히 귀 기울인다
나무의 귀 속에서 머루빛 눈을 가진 신혼벌레 한 쌍
저녁밥 안치는 소리
고아원 뒤뜰에 몰래 쌓이는 눈 같다 죽음은
그녀가 짊어진 둥근 봉분에서
초저녁 별들이 흰 밥알처럼 익어가고
새들이 아픈 기억을 물고 오동나무 숲으로 날아간다
-2012년 애지 가을호
1992년 《작가 세계》로 등단
시집-『국어 선생은 달팽이』『착란의 돌』
『뽈랑공원』 『오렌지 기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