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옷/ 정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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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2-12 07:46 조회3,489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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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옷
정용화
달 속에 배냇옷을 숨겨둔 적이 있다
나무 하나 남기지 않겠다는 듯
밤이 서둘러 어두워질 때
방금 물에서 건져 올린 수평선을
둥글게 말아쥐고 보름달이 뜬다
전생에서 이생으로 건너오는
영혼을 위해 최초로 만들어지는 옷
그 배냇옷을 만들기 위해 달은
날마다 바닷물을 길어올려 천을 짓는다
명주실을 한 올 한 올 풀어
밀물과 썰물을 엮어 짠 물의 직물
배냇옷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둥글게 부풀었다 작아지는 달
배냇옷이 하얀 것은 달빛이 배어든 흔적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달 속에 맡겨둔
물의 옷을 찾으러 가는 여정이다
이생을 다하고 다음 생을 건너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로 지은 옷이 필요하다
오늘도 물의 옷을 지으려고
밤하늘에는 달이 빛의 실타래를 풀고 있다
정용화
200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
『흔들리는 것은 바람보다 약하다』
『바깥에 갇히다』
『나선형의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