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지는 숲/ 조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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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1-22 18:30 조회3,56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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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지는 숲
조 용 미
숲은 어둠의 기미로 달콤하다
잣나무 숲으로 난 오솔길은 내 얼굴을 빌려 저녁이 뿌리는 물뿌리개의 물방울들을 촘촘히 다 들이마신다
나뭇잎 사이마다 어둠이 출렁여도 밖으로 난 숲길 한쪽은 아직 환하다 연한 어둠의 파란에 둘러싸여 나는 몸에 천천히 붕대를 감는다
당신도 언젠가 이 숲에 왔을 것이다
숲은 폭풍의 예감으로 일렁이고 있다
당신도 이 숲에서 심장을 움켜쥐어보았을 것이다
바람이 손바닥의 붉은 꽃잎들을 날려버렸을 것이다
숲이 어두워지는 것이 내 몸의 어둠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물감이 풀리듯 어두워지며 흘러내리는 시간들,
오랜 격정으로 숲이 대낮에도 어둠을 불러들이곤 했다는 걸 당신은 알지 못하리라
당신도 여기 서 있었을 것이다
혈우병에 걸린 고래처럼 단 한 번의 상처로 멈추지 않는 피를 오래 흘리며 흰 붕대를 붉게 물들였을 것이다
어둠으로 회오리치는 붉은 숲은,
조 용 미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기억의 행성』
『 나의 다른 이름들』
산문집 『섬에서 보낸 백 년』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