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익어간다 외 1편 / 정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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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1-02 19:21 조회4,08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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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익어간다
멀리서 오는 것들은 소리를 품고 있다
떠났던 계절이 돌아오는
플랫홈에 기차가 도착할 때도
소리가 먼저 달려온다
바람이 동사가 되는 시간
허공을 떠돌던 구름은 빗소리가 되어 스민다
새들은 입안 가득
음절들을 물고 와 숲속에 펼쳐놓는다
나무들은 그 소리를 들으려 몸을 기울인다
가을산이 소리로 자욱하다
기울인다는 것은, 기울여준다는 것은
소리가 스며들 틈 하나 마련해 두는 것
소리가 소통이 되는 힘으로
새들은 날개를 편다
호명되기를 포기한 이름들이
누군가를 간절히 부를 때
화답이라도 하듯
가을은 나무마다 붉은 열매 하나씩 내민다
서투른 다정
사람독이 묻어온 날에는
저녁이 되어도 쉽게 어두워지지 않는다
어둠에서 풀려나오는 무늬를 이해하는 밤
먼 곳이라는 말은 슬픔을 동반한다
모든 소리들이 사라진 곳에서
수요일은 시작되고
내가 불면의 시간을 음악으로 바꾸려고 했기에
물고기들은 잘 때도 눈을 감지 못한다
알코올이 없는 맥주를 마셨기에 밤에도 무지개가 뜬다
오래 건너지 않은 건너편처럼
아직은 낯선 먼 곳의 시간
우리가 버린 말들이 누군가의 귓속에서
농담으로 피어난다면
슬픔은 어떻게 편집될까
시들어가는 마음을 버리지 못해
안에서부터 말라 죽는 용설란처럼
실패한 다정들은 사막에 발을 담근 채
집요한 고요를 견딘다
모서리에 자주 부딪히는 구름의 언어가
내 안에 살고 있어
너는 푸른 눈동자를 지니게 되었다
정용화
200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
『흔들리는 것은 바람보다 약하다』
『바깥에 갇히다』
『나선형의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