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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원에서 외 1편 / 이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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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1-30 21:23 조회3,504회

본문

매화원에서

 

 

나는 없네 나를 털어 바친

매화원, 꽃송이들만 앞 다투어 피고 있네

 

보게나 꽃송이들로

피어나는 나일세

 

꿀벌들, 윙윙대는 날갯짓도

때로는 나인 적 있네

 

그렇네 꽃향기로

번져 가는 나도 있네

 

매화꽃, 꽃진 자리

오물오물 알져 오르는 저 열매들!

 

열매들로 뽀얗게 자라

푸르른 하늘, 흰 구름

제 속에 가득 담기도 하네

 

나는 없네 나를 털어 바친

바람으로 물결로 떠 흐를 뿐이네.

 

 

삼베빛 저녁볕

 

 

삼베빛 저녁볕, 자꾸만 뒷덜미 잡아당긴다

어지럽다 아랫도리 갑자기 후들거린다

종아리에 힘 모으고 겨우겨우 버티고 선 채

흐르는 강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산언덕을 덮고 있는 조팝꽃처럼

마음 몽롱해진다 낡은 철다리조차

꽃무더기 함부로 토해 놓는 곳

간이매점 대나무 평상 위 털썩, 주저앉는다

싸구려 비스킷 조각조각 떼어먹으며

따스한 캔 커피 질금질금 잘라 마신다

초록 잎새들, 팔랑대는 저 아기 손바닥들

바람 데려와 코끝 문질러댄다

쿨룩쿨룩, 삼베빛 저녁볕 잔기침하는 사이

강마을 가득 들뜬 발자국들 일어선다

싸하게 몸 흔들며 피어오르는 철쭉꽃들

벌써 물속의 제 그림자 까맣게 지우고 있다.

 

 이은봉(李殷鳳): 1953년 충남 공주(현, 세종시)에서 태어나 숭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삶의 문학》 제5집에 「시와 상실의식 혹은 근대화」를 발표하면서 평론가로 등단했고, 1984년 《창작과비평》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에 「좋은 세상」외 6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좋은 세상』, 『봄 여름 가을 겨울』, 『절망은 어깨동무를 하고』, 『무엇이 너를 키우니』,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 『길은 당나귀를 타고』, 『책바위』, 『첫눈 아침』, 『걸레옷을 입은 구름』, 『봄바람, 은여우』 등이 있고, 시조집으로 『분청사기 파편들에 대한 단상』, 평론집으로 『실사구시의 시학』, 『진실의 시학』, 『시와 생태적 상상력』, 등이 있으며, 연구서로 『한국현대사의 현실인식』 등이 있다. 한성기 문학상, 유심 작품상, 한남문인상, 충남시인협회상, 가톨릭 문학상, 질마재 문학상, 송수권 문학상, 시와시학상 등을 수상했고, 현재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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