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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구두 / 박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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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1-30 20:53 조회3,021회

본문

빨강구두

 

 

박수빈

 

 

 

저녁 달빛이 내가 홀로 앉은 빈 상점 창가로 들어왔던가. 침이 고였던가. 꼭 맞을 듯 놓인 붉게 타오르는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두구두구두구오래전의 사랑 같은 뜨거운 발자국. 달빛이 속으로 들어와. 내게 몸을 스윽 밀어 넣었으면, 잠인 듯 스몄으면. 두구두구두구물에 술을 탄 날들이 울컥. 달빛이 내 몸에 스며들어. 돛단배를 타고 북을 울리며 물결 너머 노를 저어. 내 키를 크게 하고 내 발은 더 자라서 이 세상 어디든 구두구두구두구이 강에서 저 강을 찰랑거리며 건너는 불길에 그을린 발이 종종 줄달음을 치며, 달리고 달렸어. 머리를 질끈 묶고 팔을 걷어 부치고 꾹꾹. 가방에 앞만 보며 몇 십 년을, 세상은 넓고 가야할 곳은 내 발이 커지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아났지. 그동안 모래 소리는 발가락 속으로 흘러들고 밑창은 너덜너덜, 두구두구두구

( 시집청동울음에 수록)

 

 


 

박수빈

 

전남 광주 출생, 2004년 시집 달콤한 독으로 작품 활동 시작, <열린 시학> 평론 등단, 시집청동울음, 평론집스프링 시학, 다양성의 시, 상명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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