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는 오줌발이 짧았다 / 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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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1-02 19:30 조회4,170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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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는 오줌발이 짧았다
정선
랭보는 탁상에 올라가 오줌을 갈겼다
지팡이를 목에 두르고 깃털을 머리에 꽂고
입술에 장미를 붙인 부르주아 예술가들
모두가 애송이라 코웃음쳤것다
랭보의 오줌발에는 가시가 돋아 있었다
가시는 입술에 머리에 목에 박혔다
그가 웃어제낄 때마다 지린내가 진동했다
열일곱 나이에 랭보는 예술을 알아버렸단 말이냐
그 속 빈 환상을
내가 랭보에게 반한 건 순전한 그의 오줌발
랭보의 오줌발이 삼 센티미터만 길었어도
파리는 살아 퍼덕거렸을까
랭보가 아프리카로 간 까닭을 알 것도 같았다
파리에서 보낸 한철, 그가 핥았던
베를렌의 탱탱한 엉덩이에서도 예술은 피어오르지 않았다
꽃이 피지 않는 엉덩이
울었다 랭보는
하늘 아래 어디에도 손잡을 이 없고
예술은 기우뚱 갸우뚱
찢어진 웃음에 감춰진 삐에로의 눈물을
단호하게 외면하는 거리
그의 몸은 바람의 식민지가 되었다
어쩌자고 파리를 버리고 지중해 태양과 뒹굴었을까
시와 맞바꾼 커피와 무기 그리고 썩어가는 무릎
구멍 난 바람을 신고 사라진 랭보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그리워했고
랭보의 오줌발이 버거울 즈음
놀리는 입술에 눌려 내 안의 랭보들이 퍼렇게 질려갔다
점차 희미하게 사라지기보다 한순간에 타 버리는 것이 낫지*
어둠 속 누군가가 광장 가운데에 섰다
바람에게 피와 살을 내어준 채
등뼈 하나로 곧추선 랭보
내 무릎 위에 그가 다시 앉았다
썩어가는 내 무릎에서 젖이 흘렀다
이 하얀 지옥불!
나는 도끼로 왼다리를 잘랐다
그때 일제히 핏기가 내 아랫도리에 몰렸다
오줌이 치솟았다
저 빛나는 오줌발
저 찬란한 타락
순간 내 눈이 밝아졌다
나는 바람을 고쳐 신는다
구두여
부디 내게 길을 가르치지 말아다오
* 커트 코베인의 유서 중에서 따옴
<약력>
2006년 《작가세계》 등단.
저서: 시집 『랭보는 오줌발이 짧았다』 에세이집 『내 몸속에는 서랍이 달그락거린다』
현 종합문예지 계간 《문예바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