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흘러가는 저 가을강에/ 김인희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6-23 11:35 조회4,211회관련링크
본문
높이 흘러가는 저 가을강에
강이 시작될 때 내 몸이 시작되었고
강이 언어를 얻었을 때 함께 언어를 얻었다
그 뜨거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높은 아파트의 그림자가
희미한 옛 사랑처럼 무심히 누워 있는 가을 저녁의 강물
바람에 흔들리는 강아지풀들이 말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등보이고 돌아서는 여름에게 팔을 흔든다
청춘은 뜨거운 열병처럼 지나가고
뜨거워진 가슴과 머리 식힐 시간도 없이 흘러온 가을 강
그 강가의 둑길을 걸으며 잊혀졌던 언어들이 아스라이 밀려온다
내가 사랑했던
사랑하지 않았던 모든 언어들을 이끌고
가을 강에
높이 흘러가는 저 가을 강에 흘려보낸다
그 강가의 둑길에
이제는 가버린 사랑을 가을 강에 깊이 눕혀둔
눈빛 순한 사람들이 아침마다 산책을 하고
노랗게 희끗 무심의 물이 벤 강이지풀들은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고
흔들리는 시간들 강물에 흘려보낸다 멀리 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