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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外 2편 / 이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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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1-01 20:08 조회1,429회

본문

사월

 

차가운 맨손을 비비면 사월이 구겨지는 소리가 난다.

그때 모란이 핀다.

 

구겨진 편지처럼 피어나는 모란, 썼다가 지우고 또 썼다가 지우고

동그랗게 뭉쳐져 바닥으로 던져진 많은 사월이 그 속에 담겨있다.

 

내일의 날짜들처럼 벌들이 윙윙거리는 사월의 만개, 불을 땐 듯 붉은 꽃송이들, 사월의 아랫목인양 냉방에서 쫓겨난 화씨인양 겹겹이 껴입은

고민인 듯 물결인 듯 바람이 미끄럽게 지나간다.

 

맨손을 비빌 때마다 섣불리 구겨버린 시간들이

아득한 신기루 하나씩 꽃술로 품고 있다.

 

주변을 맴돌며 속으로 삼켜버린 이름이며 추신 같은 글자들 위로 또 모란이 핀다. 깊어진 햇살 쪽으로 귀 기울이는 동안 눈꼬리만 겹겹이 늙었다. 모란이 피는 주변을 갖고 있다면 그건, 내 주위를 서성거렸던 어떤 이름이 있었다는 것.

 

사월이 묵고 또 묵으면 모란 대 같이 늙어서

한 송이 구겨지는 사월만 애가 탄다.

 

 

    

 

쉬는 날

    

 

끝까지 밀린 것들은 다

쉬는 날에 몰려 있다

서로 먼 귀를 갖고 있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간극도

유채꽃 무더기 같이 다글다글 앓는 소리도

이날저날을 기웃거리고 미루어 둔 일들도

모두 쉬는 날들에 모여 있다

흐르는 물살을 건너가는 징검돌의 사이 같은

유실수들의 해거리 같은 그 중간의 쉬는 날

욱신거리는 지병도 묵은 때 낀 구석도

다 풀린 파마머리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자리까지 와 있다

 

한때는 중심이었던 일들

그 중심에서 밀려나면 모두

쉬는 날로 몰려간다

줄줄이 묶여 있는 혈연도 쉬는 날이 있어

모른 척, 눈 감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하는

헛된 바람이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갓 겨울을 견딘 것들이 쉬는 날을 기다린다고

날들과 날들의 그 먼 간극 사이에서

발을 구르고 있다고

어눌한 발음들이

수화기 너머 끊어졌다 이어진다

    

두꺼비

 

 

소낙비 끝

두꺼비 한 마리 느릿느릿 마당으로 기어든다

 

집 있는 자식 있고

집 없는 자식 있다

 

두껍아 두껍아 이 낮은 처마의 헌집 갖고 새집 다오

 

노부부의 손목 끝에 우두커니 깍지 끼고

앉아있는 두꺼비들

그 느릿한 두꺼비들이 집을 내어주고

그러고도 남은 무주택 자식 하나 고민하는 두꺼비 등짝

한껏 굽은 어깨에서

한동안 잠잠하던 매미 소리가 욱신거린다

 

무슨 걱정이기에 저리 우둘투둘한지

근심을 한 몸에 지고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두꺼비

슬금슬금 장독대 뒤로 몸을 숨긴다

어둑한 구석 잠시 머물 공간이면 족한 그에게

집이란 그저 몸을 가리기 좋은 곳

몇 장의 풀잎과 서늘한 그늘이면 족하다

 

이집 마당과 마루 밑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등짝에 기와를 얹은 집 몇 채 있다

그중 어떤 집에는 뜨거운 전류가 흐르기도 한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아직도 귀에 쟁쟁한 먼 기억의 노랫소리를 따라

느릿느릿 비 개인 텃밭으로 몸을 옮기는 부부

봉숭아꽃 만발한 마당 끝으로

꽃그늘이 붉게 떨어져 있다

 

 

  

 

 

 

이혜순

 

2010년 시안 등단

시집<곤줄박이 수사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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