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육체파 부인의 유언장/ 임승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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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2-10 20:55 조회4,33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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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육체파 부인의 유언장
모든 육체적·정신적 감각 대신 …… 이 모든 감각의
단순한 소외, 즉 소유라는 감각이 나타났다.
- 칼 마르크스, 「사유재산과 공산주의」중에서
발목은 허공에게
어떤 밤들은 쿵쾅거리고 어떤 밤들은 이어달리기를 할 것이다 달려가는 우주에서 누군가는 자주 어지럽겠지만 한때 나의 소유물이었던 발목에게 가장 어울리는 처분이라 사료됨
동그란 무릎은 계단에게 옥상에게 옥상의 물탱크에게 차올라 있는 느낌으로 오랫동안 고독
귀는 빗방울에게 둥글게 만지는 날씨에게
뽑아서 던진 눈동자는 까마귀에게 캄캄한 밤하늘로 날아가 우주가 짓고 있는 마지막 표정인 날씨에게
구릉, 키가 큰 구름, 눈썹, 무덤, 연필, 식탁보, 그리고
가장 멀리 있던 코는 종려나무에게
이제 와 고백하자면 나는 자주 규슈의 길가에 서 있었다 17번가 모퉁이 카페 시계는 주로 오후 3시에 멈춰 있다
발바닥은 길바닥에게 던져주고
내가 살아서 유일하게 한 질투는 떠나는 자들을 향해 있었지 그런 기분으로 허공에 손바닥을 올려놓는다
입술은 태양에게
이후로 토마토는 익어간다 입맞춤 속에서
손톱은 피아노에게 이 순간에 어울리는 스마일은 필요하고 창문을 타넘어 가는 나의 육체, 안녕
시작 메모
나는 교문 앞에서 탭댄스를 추고 있었다. 나는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트 프로젝트를 읽고 있었다. 나는 불가능이야말로 가능을 능가하는 유일한 상태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는 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나는 멈추지 않고 오고 있었다. 날씨가 좋았다.
약력 : 2011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으로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가 있음. <김준성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