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과 나/ 권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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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2-01 14:51 조회4,481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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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과 나
권이화
당신은 그를 모르고 그는 당신을 모르고
이 문장은 죽은 시인이 정착하기 좋은 곳인가 귀를 세우다가
시로 살아가는 방식에 귀를 내린다
당신은 시인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등 뒤에 뜬 별을 보는 것이라는데
코타키나발루산 새벽녘 암벽을 오를 때
하늘에는 몇 십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던 별이 있었지만
아스라한 낭떠러지를 보고 착오를 바로잡듯이
되돌아오는 길
벼랑 밑에 핀 낯선 별꽃
왼쪽 정강이가 얼어버린 당신 암벽 꼬리에
절망의 낙관을 찍었고….
허공에 아슬아슬하게 떠 있는 죽은 시인의 얼굴을 찾아
별의 말로 점치다 오른쪽 손가락을 부러뜨린다
그는 당신을 모르고
이카로스 추락이 있는 풍경*을 모르고, 당신은
먼지를 털 수 없는 하늘 어디쯤에
시인들이 살아가는 아슬아슬한 방식에 찍을 낙관을 생각한다
* 대 피테르 브뢰헬 그림
권이화- 2014년 미네르바 등단, 현 미네르바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