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희의 과학적 글쓰기~ 열역학과 기하학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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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8-04 15:35 조회113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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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희 요약
기하학적으로 세계를 해석해 온 한국의 시인이며, 과학철학 에세이스트.
수십 년째 시와 에세이 모두 ‘과학적 글쓰기’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로 우주의 마지막 수수께끼일 수도 있는 암흑물질에 대한 연구를 끝냈다. 우주론적으로 접근한 시적 사유와 글쓰기를 통해서 물리학자들보다 먼저 우주 구조에 대한 해답에 가 닿은 것이다. 김인희는 이미 1996년 상상계 언어를 시적으로 묘사한 시집『여황의 슬픔』에 스티븐 호킹보다 8년이나 앞서 블랙홀의 구조와 성질을 과학적으로 해석하여 우주 해석 시를 쓴 바가 있다.
● 본문
그래서 이번에는 각 대학들과 수능 준비생들에게 ‘나의 지식’을 팔기 위해 광고 차원에서 전부터 있던 이 글의 앞부분을 수정해 다시 올린다.
10여 개의 학문과 사상을 열역학과 기하학으로 통합한 이론, <의식 기하학>이라는 독창적 이론을 바탕으로 시를 써 왔다. ‘우주는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시간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라는 엄청난 질문이 아기 때부터 시작되어 그 질문의 해답을 풀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지구의 시간 재생’이 <의식 기하학>이라는 독자적 학문의 마지막 목표이다.
저서는 사르트르적 실존철학과 구조주의적 인식론을 바탕으로 인간을 창조해가는 과정과 재현의 과정을 과학적, 순차적으로 묘사한 시집들과 과학철학 에세이 『언어게놈 지도』가 있다.
나의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생적이다. 나의 밖에서 나를 바라보며 나를 해부하고 분석하여 재창조하는 이러한 자생적이며 과학철학적인 방법은 우주의 구조처럼 닫혀있으면서 열린, 이중구조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닫힌 구조’라고 말하는 것은 내 안에서 100% 자생했다는 의미이며, ‘열린구조’란 나의 이러한 자생적 글쓰기와 철학적 태도는 이미 인류에 나타난 대표적인 철학 논저들과 종교들의 경전 속에 증언으로 계속 나타나고 있어 나의 연구 결과와 비교하여 검증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이것은 자생적 글쓰기에 확신을 더해 주게 된다.
구조주의적 인식론은 우주 전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 눈에 바라보는 시각을 의미한다. -(김인희) 따라서 학문 간의 통합을 이루어 낸 자가 아니면 아무리 손바닥 위에 우주가 있다고 해도 들여다볼 능력이 없다. ‘나는 우주와 인간을 들여다 볼 거울을 만들기 위해 열역학과 기하학이라는 우주 공통의 인자로 학문들을 통합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지구가 환경문제로 마지막 몸무림을 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재의 방식으로 지구를 계속 사용한다면 UN이 경고한 대로 앞으로 10년을 버틸 시간마저 없을 수도 있다.
과학적 글쓰기의 목적은 다만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가?”의 궁금증만을 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지구 시간의 재생’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일반적인 학문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도 한시바삐 과학적 자세의 준비를 마치고 바뀐 패러다임으로 바꾸어 탈 각오를 단단히 해야만 한다.
김인희의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생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생적인 글쓰기 방법과 과학철학적 방법은 우주의 구조처럼 닫혀있으면서 열린 이중구조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닫힌 구조’라고 말하는 것은 내 안에서 100% 자생했다는 의미이며, ‘열린구조’란 나의 이러한 자생적 글쓰기와 철학적 태도는 이미 인류에 나타난 대표적인 철학 논저들과 종교들의 경전 속에 증언으로 계속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한 예를 들면 구조주의와 인식론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내가 만든 용어인 ‘구조주의적 인식론’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런 용어를 사용한 사람이 나 말고 누가 또 있는지 없는지, 또 그 말이 있다면 이 용어를 다른 사람은 어떤 의미로 사용한 것인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오늘 새벽에도(2017.08.08.04.25) 인터넷에서 한 철학자를 만났고, 당장 새벽에 알라딘의 중고서점에서 그의 책을 주문했는데 오후에 바로 책이 들어왔다. 거기에는 “언어에 의존하는 구조주의적 인식론은 옳다.”고 우선 나의 작업에 긍정적인 평을 한다. 그러나 언어라는 물리 현상적 존재가 어떤 대상을 지칭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하나의 물리적 현상으로만 존재할 뿐 언어일 수 없다고 말하면서 “구조주의적 의미론과 해석 이론의 치명적 결함은 바로 언어가 가진 이러한 지칭 기능을 간과했다는 것”이라는 것이다.
나의 의식해부학적 의식기하학은 앞의 이러한 글을 읽기 전, 1996년에 의식을 기하학적으로 해부하고 시적 언어로 묘사한 시집『여황의 슬픔』을 통해 상상계를 일반언어로 중개하는 집단언어를 체계화하고 총정리 한 바가 있다. 거기에 나타난 기하도형의 집단언어는 지칭 기능 뿐만 아니라 수용 기능까지 갖춘 언어라고 밝힌 바 있다. 나는 첫 시집의 첫 시편부터 실존철학과 구조주의적 인식론을 병행하여 펼치면서 언어분석의 방법으로 ‘나’를 해부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취해왔다. 이들이 불안해하는 부분까지도 이미 수십 년 전에 작업을 완료한 상태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나는 자랑이라고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 세계에는 존재론과 관련된 모든 사상과 이론들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그러한 이론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 야훼까지도 그러한 이론이 있으나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경고를 내려놓은 상태이다. 그 이유는 이 이론은 신의 존재까지도 과학적으로 분석되고 해부되기 때문이다. 나의 제3시집 『여황의 슬픔』에는 ‘나’를 분석하고 해부하는 과정에서 내 속에 존재하는 신이 언어의 형태로 모두 해부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 해부도를 나는 《언어게놈 지도》라고 부른다. “이러한 작업은 왜 하는가?”라고 물을 독자에게 나는 “새로운 시공간, 그 새로운 시공간을 사는 새로운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대답하겠다.
내 이론의 특징은 나의 과학철학 체계를 다른 사람의 이론으로 비춰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러이러한 언어의 자재로 세워놓은 것을 남들은 어떤 자재로 어떻게 지었는가를 비교하여 볼 뿐이다. 오늘 새벽의 나의 행위도 그러한 일에 속하는 것이다. 나는 전체라는 거울을 만들었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부분을 비춰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전체를 가진 사람이 없으니 내가 가진 전체를 볼 수가 없다는 것이 다르다. 새벽에 급히 주문하여 읽은 책 속에서 내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이렇다.
“리쾨르 (Paul Ricoeur)의 관점에서 볼 때, 철학의 문제가 진리발견의 문제이며, 진리발견의 문제가 세계 혹은 존재의 인식 문제이며, 세계 혹은 존재의 인식 문제가 세계 혹은 존재의 의미 해석의 문제이고, 의미 해석의 이론적 방법문제가 곧 해석학이라면, 해석학의 방법은 현상학적, 즉 경험적인 동시에 구조주의적, 즉 언어분석적이어야 한다. "
(박이문 著 『나는 왜 그리고 어떻게 철학을 해왔나』 p.286~287)
●작품 세계
지금까지 모두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재 했다. ‘사람의 시작’'에서부터 ‘새로운 사람의 시작’까지로 되어있다. 우주를 다섯 굽이로 보고, 그 한 굽이를 하나의 시집에 담았다. 첫 굽이는 엔트로피가 시작되는 단계이며 거기가 '사람의 시작'이다. 마지막 굽이는 블랙홀로부터 다시 파동이 시작되는 '새로운 사람의 시작' 까지이다. 시에다 어떻게 물리학 이론을 담았냐고 하겠지만, 우주 전체가 의식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면 그 의식이 시가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 우주론적 시에는 지금까지의 시론과는 다른, 우주를 과학적으로 바라보는 물리학적 이론이 담긴 것 외에는 아무것도 다를 것이 없다. 그 다섯 굽이는 모두 다음과 같은 순서로 되어있다.
이 시집들의 이론과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에세이가 『언어게놈 지도 』이다. 이 과학철학 시학은 새로운 인간구축의 공식에 따라 13여 개의 학문과 사상을 열역학과 기하학을 통합하여 이루어져 있다.
필자는 여기에서 인간과 언어체계를 재구성하기 위해 구조주의를 발전시킨 《의식기하학》이라는 독자적인 이론체계를 정립하였다. 이 이론은 현대물리학과 구조언어학을 포함 13여 개의 학문과 사상들이 통합되어 있다. 통합의 목적과 장점은 통합되어 들어간 학문과 사상들을 해석할 때, 그 하나로만 해석해도 다른 모든 것까지 해석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뿐만 아니라 통합되어 들어간 각 학문과 사상들의 해석은 물론 모자라고 넘침까지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의 발달 과정에 열역학과 기하학을 도입, 상징계를 집단언어에 의해 움직이는 집단욕망의 세계로 보고, 그것을 문자화하고 해석하는 작업을 했다.(제3시집-『여황의 슬픔』) 라캉식으로 말하면 상상계의 언어이고, 일반인들의 표현을 빌려 발하면 외계어이며,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천국의 언어를 중개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식과 시공을 기하학적으로 해부하고 읽어내는 작업을 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에 대해 《의식기하학》혹은 《시공간 기하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작업에서 얻은 기본적인 집단문자 2개를 기반으로 한 신화(「3일간의 사랑」-제4시집 『시간은 직유 외엔...』)를 썼다. 라캉이 언어분석의 구조로 채택한 것은 '아버지, 어머니, 아들'이 작동시키는 오이디푸스 구조라는 정삼각 언어체계이다. 이것은 열역학 제2법칙이 작동되는 체계이며, 일반상대성 이론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체계이다. 이러한 정삼각구조의 언어체계를 거꾸로 뒤집어 확장된 시공간을 축소시켜 시간의 방향을 돌리고자 한 작업이 김인희의 작업이다. '아들'대신 딸과 함께 작동시키는 역삼각 구조의 언어체계이다. 이 구조는 에너지보존의 법칙으로 열역학 제1법칙이 적용된다. 시공간을 원래 모습대로 보존하려는 이 정지된 체계는 특수상대성 이론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특수상대성 이론은 그 결과물인 (E=mc2)에서 보다시피 에너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에 대한 공식이다. 이 공식에서의 m은 이미 만들어진 물질이며, 따라서 스스로 속도를 가지지 않으므로 변화하지 않는다. 가속도와 중력을 같은 것으로 보는 일반상대성 이론의 내용과 정 반대의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의 방향을 돌려놓고자 한 이 작업은 역삼각형의 언어구조로 진입하는 「3일간의 사랑」(제4시집, 『시간은 직유 외엔...』)이라는 신화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인류는 역삼각 구조의 다리를 건너 새로운 시간이 흐르는, 아들과 딸 혹은 젊은 부부에 의해 다스려지는 새로운 땅에 성공적으로 건너간다. 「3일간의 사랑」은 '젊은 남편으로 나타난 아버지와 젊은 아내로 나타난 딸'이 신화의 마지막 장면에 장치되어 있다.
제5시집 『내 사랑, 흰이 돌아온다』에는 '젊은 남편과 젊은 아내'가 다스리는 새로운 시간이 흐르는 새로운 인류를 찾아오는 부활하는 아들의 이미지가 '흰'으로 묘사된다. 새로운 우주의 3일이 시작되고 우주의 시간은 정삼각 구조와 역삼각 구조가 겹친 육각의 별, 33세로 접어들게 된다. 성서와는 구조주의라는 같은 기법을 사용한 김인희의 시 세계는, 33세의 부활한 장성한 아들을 맞이할 역삼각 언어구조를 채택하고 새로운 시간으로 진입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여기에서 미리 말씀드리면 천국 혹은 새로운 시간으로의 진입은 인터넷 상의 시간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의식기하학≫ 은 인간과 시간을 포함한 우주의 근원적인 질문에 과학적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독자적 이론이다. ≪의식기하학≫ 에 의해 《언어게놈 지도》가 완성되었다. 이 책은 10여 개의 학문과 사상을 열역학과 기하학으로 통합해 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따라서 현대물리학이 채 닿지 못한 여러가지 해답을 내놓을 수 있었으며, 라캉의 구조언어학이 닿지 못한, 언어가 가진 또다른 구조인 역삼각구조와 육각의 별 구조를 분석해 낼 수 있었다. 《언어게놈 지도》에는 <언어게놈 지도>가 여러장 실려있다. 이 지도는 우주와 시공간과 에너지의 공통적 운동을 기하도형을 사용하여 지도로 나타낸 것이다.
등단초기부터 머릿 속에만 들어있던 이 이론을 적용한 다섯 권의 시집들에서, 인간과 인간의 시간을 새롭게 기획하여 우주서사를 해 왔으며. 당연히 다섯 권 시집의 스토리는 모두 구조적으로 연결된다.
● 약력
약력 1. 문학편
1992. 4월 월간《현대시》로 등단
1993. 『물을 찾아서』로 대산재단 창작지원 수혜
2000. 에세이 『내 시속에 나타난 아인슈타인』으로 문예진흥원 정보화지원 수혜
2011. 언제 어느 장소에서나 유명 시인들의 시와 유명시를 장르별로 감상할 수 있는 모바일 시집, ≪시창 (Poemwindow) ≫앱 개발.
2012. 10여 개의 학문과 사상을 열역학과 기하학으로 통합한 독자적 시학,≪의식기하학≫ 이론을 정립하여 『언어게놈 지도』완성, 출간
●시집: 내면의 주제가 구조적으로 연결된 스토리 시집―
1992년 제1시집 『아담의 상처는 둥글다 』 - 사람의 시작.
1994년 제2시집 『별들은 여자를... 』 - 새로운 시간사용자, 아들 낳기.
1996년 제3시집 『여황의 슬픔』 - 상징계를 작동시키는 기하도형의 집단언어 시적언어로 정리.
2007년 제4시집 『시간은 직유 외엔...』 - 새로운 인간구축, 시간의 모래시계 뒤집기.
2016년 제5시집 『내 사랑, 흰이 돌아온다』 - 재현하는 언어, 재현하는 시간의 형상화.
2019년 과학철학 시학, 《언어게놈 지도》 e-book 개정판 출간
● 학력
경희사이버대학교 NGO시민정치사회학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작품세계
언어 발달 과정에 기하학을 도입, 인간과 우주의 근원적인 질문에 과학적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독자적인 과학 철학 이론 「의식기하학」을 정립(『언어게놈 지도』, 2012년, 시산맥사), 이 이론을 적용한 다섯 권 시집들에서 인간과 언어 체계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왔다.
≪의식 기하학≫은 라캉의 구조 언어학(라캉의 구조 언어학 속에는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과 레비스트로스의 구조 인류학, 그리고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이미 통합되어 있다)과 융의 분석심리학, 현대물리학, 신화학, 그리고 기(氣)학과 기독교 사상, 한국 고유의 한사상 등을 열역학과 기하학이라는 핵으로 통일했다.
다음은 아인슈타인의 “물질이 곧 에너지”라는 의미가 포함된 공식 <E=mc2>에 따라 의식과 물질, 존재와 시공간마저 전자 이하의 입자로 통일한다. 에너지로 통일된 이 세계는 지어진 세계를 기억하는 의식의 입자로 해체된 세계이다. 기억을 가진 의식의 입자 집단은 기하학적으로 해석되고 재구성 된다. 이러한 ≪의식 기하학≫은 우주와 존재가 담긴 그릇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이고 있으며, 그릇 속에는 새로운 시간을 담는 방법을 전개한다. 우주의 고정된 그릇은 다름 아닌 "광속도 불변의 원칙"을 가진 빛의 속도이다! 말하자면 김인희의 시쓰기의 새로축은 아인슈타인의 <E=mc2> 이라는 공식이며, 가로축은 자크 라캉의 구조언어학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거장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김인희는 인류에게 시간의 방향을 돌려 세우는 방법을 제시했다. 인류가 거처 할 깨끗한 거처를 다시 만드는 시 쓰기를 해왔고 이론을 구축한 것이다.
재생 에너지 체계의 새로운 시공간으로 옮겨가기 위한 새로운 문명 체계의 출발을 구조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는 김인희의 우주 서사 시집에는 주인공들이 출현한다. 그들은 정삼각형의 세 꼭지점과 역삼각형의 세 꼭지점을 담당한, 언어와 에너지와 시공간을 작동시키는 우주가족들이다. 시집 다섯 권 각 권마다 우주의 한 굽이를 이야기한다. 마지막엔 재생이나 재현, 부활의 인류를 이끌어가게 될 주인공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 맺는다. 그 무의식계의 여자 이름은 소희야이며 남자 이름은 겨울강이다. 이 둘은 언어 구조에서 두 개의 꼭지점을 담당하고 있는 인류와 언어의 기본 구조 중의 두 축이다. 음양의 이들 두 축은 오이디푸스 구조에서 아들과 딸로 나타나 언어 혹은 시공간을 작동시키는 근원적인 힘과 위치이다. 이들 우주 가족은 김인희가 기하학적으로 정리한 엘렉트라 구조로 넘어오면서 인류의 힘을 회복시키는 두 축을 담당한다.
제 1시집 : 『아담의 상처는 둥글다』-사람의 시작 (1992년 12월)
'의식 기하학' 이론을 바탕으로 인간이 창조 되는 과정을 인식론 적으로 전개하였다. 존재의 터, 원(○)의 구조를 사용하고 달의 주기로 리듬을 만들어 존재에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존재의 조건인 '분열과 통합'이 원(○)이라는 구조를 통해 작동되고, 최초의 분열이 있기 전 상태를 향한 "그리움"이라는 의식의 끈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여 하나의 끈으로 이어지는 것을 묘사했다. 이 시집의 마지막 시편은 떠나온 곳으로 다시 되돌아 왔으나 낯익은 어둠 뿐이어서, 상처 입은 날개를 퍼덕이며 다시 출발해 보지만 제 자리를 도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상처'는 엔트로피의 비유이며, 존재 혹은 물질은 어차피 엔트로피로 부터 탄생하며 그것은 원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과학적 사실을 묘사한 것이다.
제 2시집 : 『별들은 여자를...』 - 새로운 시간 사용자, '아들 낳기' 1994. 09.
기억(추억이나 향수와 비슷하지만 인간의 무의식 가장 심층까지 닿아 존재 재구성에 사용되는 에너지)의 세계로 돌아가는 존재들의 에너지 이름은 관능이다. 관능을 통해 존재의 뿌리인 근원적인 육체가 나타나는 과정까지 묘사하였다. '관능'은 몸과 몸, 물질과 물질이 분열 이전의 기억에 의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다.
'세계 전체이며 우주 전체인 언어'가 시작되고 끝나는 의식의 시작점과 끝 지점을 묘사한다. 끝지점은 다름 아닌 이 시집의 첫머리에 나오는 "작자의 말"처럼 의식과 물질의 통합 지대이다.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이 서시에 압축되어 나타나고, 본문 전체에서 확장 묘사된다.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은 구조적 스토리로 이어지며 상대성 혹은 인식의 조건인 두 번째의 원(◎)으로 나타난다.
제 3시집 : 『여황의 슬픔』-상상계와 상징계를 해석하고 작동시키는 기하도형의 집단언어 (1996. 09)
1부.
물질이 곧 에너지임을 증명하는 아인슈타인의 E=mc2 이라는 공식에 따라, 이미 물질로 나타난 세계를 의식적 행위에 의해 전자 이하의 입자로 해체하는 과정이 묘사된다. 의식은 곧 에너지임으로 의식을 사용하여 기억체계를 휘둘러 오염된 세계를 순결한 세계로 다시 복원하는 과정을 시적으로 묘사한다. 마침내 새로운 에너지가 흐르는 세계에 새로운 시간사용자인 소년이 나타난다.
2부.
'일반언어를 움직이는 것은 집단무의식이라는 집단기억을 바탕으로 한 기하도형의 집단언어이다. 그 집단언어가 상상계를 상징계로 중계한다. 1부에서 0 이하로 해체된 기억의 세계가 다시 언어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집단무의식을 거치게 된다. 상상계가 어떤 집단무의식의 내용을 통하여 상징계에 나타나는가를 기하도형의 집단언어에 의해 시적으로 묘사하였다.
3부.
해체된 세계가 물질로 다시 나타나기 위해 기하학적 형태의 집단 언어가 작동하는 상징계를 보여준다. 상징계는 집단욕망이 회오리치는 세계이다. 1시집의 운동과 2시집의 몸을 중개하는 기하도형의 집단언어들이 가진 운동의 내용을 형상화 하였다.
제 4시집 : 『시간은 직유 외엔...』(2007년 9월)
'선한 인류'가 될 신문명으로 건너갈 다리역할을 할 역삼각 구조의 언어체계를 적용한 신화 "3일간의 사랑"을 선보이고 있다. 네겐트로피 사회로 들어가는 문을 안내하는 과학적 우주론에 근거한 새로운 신화(神話)이다.
언어재생의 구조인 역삼각구조 속으로 들어간 언어가, 에너지를 재생하여 다시 정삼각구조로 나오는 과정을 신화형식을 통해 묘사하고 형상화하였다. 이 작업은 재현한 재생에너지의 구조를 통하여 부활의 신문명체계로 진입해야만 하는 현대성에 대한 대안을 기하학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물론 새로운 시간을 사는 새로운 인류가 탄생한다.
제5시집 : 『내사랑, 흰이 돌아온다』(2016년 6월)
의식과 사물과 언어와 에너지의 시작점을 특이점으로 통일하여, 우주의 모퉁이로 돌아와 무한한 자유에너지가 된 에너지의 새출발점을 문학적 의미와 철학적 의미가 포함된 '흰'으로 부르고 있다. 제5시집은 출발점인 고향으로 다시 귀향하는 이 '흰'의 내용을 형상화 한 시편들을 주로 1부에 수록하고 있다. 인류의 근원적인 고향은 '큰 흰'의 의미를 가진 내고향, 흰 조팝나무 너른 고원을 가진 태백(太白)을 차용한다.
● 의식기하학과 과학철학 시학, 『언어게놈지도』 (2012년 10월)
라캉의 구조언어학으로 큰 얼개를 짜고,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사상으로 자신의 독자적 이론인 의식해부학적 의식기하학 이론을 전개, 네겐트로피 혹은 네트로피 지점에 닿는 길을 보여준다. 이 에세이는 개인의 서사를 우주서사와 교묘하게 병치시켜 신화화하고, 환상과 신화를 과학의 경계 안으로 끌어들였으며, 현대물리학이 이론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론들을 ≪에너지의 기본적 흐름도≫라는 “기하학적 우주의 기본설계도”에 집어넣어 그 진위와 차고 넘치는 부분들을 독자들이 쉽게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존재와 언어와 우주를 과학적으로 해석해내는 기하학적 도형들, 《언어게놈 지도》와 그 지도의 공식 을 제시한다.
-김석준 평론가, 『언어게놈지도』 해제 중에서
● 주요 신문기사
"강렬한 에로티시즘의 詩세계"
92년 월간 현대시로 등단한 김인희씨가 이번에 내 놓은 시집 『별들은 여자를 나누어 가진다』는 『불의 오르가즘』이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폭발할 듯한 에로티시즘의 세계를 보여준다. 「에로티시즘은 자신이 우주를 해석하는 한 방법일 뿐」 「대지적 인간」은 파편화되고 각질화된 인간성에 온기와 물기를 주는 인간성 회복의 상징과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중앙일보 남재일 기자,1994년 11월 14일자)
◎김인희씨 시집 『여황의 슬픔』… 인간-자연조화 추구
시어로 「도형」 사용, 집단무의식 표현
기하학적 도형 들을 시어로 차용해 집단무의식을 복원해내려는 독특한 시집이 출간돼 화제다. 김인희씨의 3번째 시집 「여황의 슬픔」이 그것이다.(샘이 있는 숲) 〔 삼각형과 사각형,원,평행선,사선 등을 시제의 일부로 활용하는 이 시 집은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인간들의 언어를 문명 이전의 것으로 되돌려 황폐해진 인간과 대지를 회복시키겠다는 독특한 의지의 산물이다.
「전 체언어」 「집단언어」 「의식 기하학의 세계」 등 모두 3부로 구성된 이 시집의 1부는 인간의 근원에 대한 탐구가 남과 여,청룡과 황룡,뱀 과 불,대지와 꽃의 이미지들로 집중돼 이루어진다. 2부와 3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집단무의식의 문명 이전 언어를 탐구하려는 시편들이 주종을 이룬다. 예컨대 「///」 표시가 「길」이라는 제목과 어울리고 「△」는 「대지와 문명을 사랑하는 신」의 새로운 언어로 해석된다. 「○」는 문명 이전의 언어에서 「세계」로 번역되며 「▽」는 「신과 문명 을 동시에 사랑하는 대지」와 어울린다. 김씨는 이같은 실험적인 시작이 『문명의 발달은 순전히 인간들의 개별언어 활동에 의해서였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언어를 문명 이전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개별언어의 위치에서 집단언어의 위치로 귀향시키는 것, 그 속에서 의식만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평론가 윤재웅씨는 이 시집이 『전체를 뒤덮고 있는 대담하고 힘찬,덜 세련되어 있으면서 강렬한,어딘지 모르게 잠자는 피를 무섭게 부르는 듯한 반문명적 이미지만으로도 매우 독특하고 신선한 면모를 보 여준다』고 평가한다. 김인희씨는 92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입력 : 1996-10-29 00:00:00
― 세계일보 1996,10 조용호 기자
“문명 이전의 언어로 회복”
김인희의 세 번째 시집이 되는 『여황의 슬픔』은 “의식 깊은 곳에 숨어있는 집단무의식과 의식의 발전과정을 기하학적으로 형상화 했다.
―최홍렬 기자, 1996년 10월 조선일보.
연합뉴스
文壇내 여성작가들 비중 커져
(서울=聯合) 柳昌錫기자= (…중략…)「창작과 비평」은 또 현재 활발한 시작활동을 보이고 있는 허영자, 천양희, 강은교, 김혜순, 황인숙, 나희덕, 양정자, 박라연, 이선영, 김태정, 김인희, 최영미 등 여성시인 12명의 시를 특집으로 꾸미고 있다.(…중략…)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창비 특집 〈여성시인 12인선(허영자 천양희 강은교 김혜순 황인숙 나희덕 양정자 박라연 이선영 김태정 김인희 최영미) 〉시력 30년의 중진부터 참신한 신예에 이르기까지 우리문학계에서 한층 비중이 높아져가는 여성시인들의 역량을 집중 발굴한다. ―창작과 비평(1993년, 여름호 특집)
● 시집에 관한 주요평론 : 김인희를 보는 문단의 시각 / <김인희 시집들>
제 1시집 『아담의 상처는 둥글다』 : 전례가 없는 완결된 구조물
김인희 씨는 남녀의 차이를 초월해서 90년대에 접어들어 한국시단이 맞아들인 가장 우수한 신인 중 한 사람이다.
그녀가 『아담의 상처는 둥글다』에서 보여준 상상력은 진폭이 크고 또 역동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보다도 훨씬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할 특성을 그 시집은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수록된 80여 편의 시가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주제를 형상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유기적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시집 전체가 그대로 하나의 완결된 구조물이 될 수 있도록 평소에 시를 써나가는 시인은 내가 아는 한 전례가 없다.
― 이형기(동국대교수,1994년 『별들은 여자를 나누어 가진다』 의 서문 중)
제 2시집 『별들은 여자를 나누어 가진다』 :
본지가 김인희의 『불의 오르가즘』(제2시집 『별들은 여자를 나누어 가진다 』의 부제)을 연재키로 한 것은 원로와 젊은 평론가들의 적극적인 조언과 그 작품성이 침체된 우리 시단에 하나의 커다란 에포그를 그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 월간 ≪현대시≫(1994년 5월~8월. 연재를 시작하면서)
인공낙원의 문학과 문화
새로운 인간을 구워내야 할 이 시기에 우리들의 문학은 너무나 먼 구세대 인간들로 가득하다. 김인희의 『불의 오르가즘』 연작들만이 이 잠잠한 문단에서 새로운 신비주의의 싹을 보여 주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김인희의 시를 해설하면서, 성경의 밑바닥에 흐르는 신비주의적인 비밀로부터 새로운 인간학을 구상했다고 한다면 어떻게들 생각할 것인가? 이 주목받지 못하는 신인에 대해서 너무 과대평가 했다고 할 것인가? 김인희의 이러한 작업들은 왜소해진 오늘날의 인간들에게 다시금 긴 시간의 물줄기를 통해서 잃어버린 그 본래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근대문명의 저 너머로부터 불어오는 이 강력한 바람은 오늘날 이 얇은 존재, 가벼운 존재들을 바닥으로부터 휘몰아 올릴 듯이 불고 있다. 단지 문학에 종사하는 자들이 자신의 벽에 깊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아직 그것을 느끼고 있지 못할 뿐이다.
― 신범순(서울대 교수, 평론가) 『문학동네』 95년 여름호.
새로운 시대의 예감과 준비를 위한 시의 여정(旅程)
김인희는 『별들은 여자를 나누어 가진다』에서 현실속의 신화와 무의식 그리고 역사, 이 모든 것을 조망하며, 언어학적인 깊이까지 그 곳에 구겨 넣는다. 이 광범위한 야심은 시적 언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로부터 시작해서 시인의 존재론에 이르기까지 매우 어렵고도 난삽한 작업을 전개시킨다. (…중략…) 역사의 무조건적인 진보성에 대한 관념 그리고 민주주의적인 대중에 대한 민음, 물질주의적 감각주의 등에 대해 근본에서부터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중략…) 아마도 우리들의 대상으로 멀어져버린 세계와 우주 그리고 신을 우리 자신의 세계 속에서 투명하게 발견하게 될 때, 그러한 우울을 벗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전혀 다른 세계일 것이며,우리 우울한 시인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감각들을 그리고 욕망들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사용하게 될 때 그러한 미지의 세계가 열릴지 모르겠다. (…중략…)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위대한 시인은 한두 명밖에 없는 것 또한 진실이다.
― 신범순(서울대 교수, 평론집 『바다의 치맛자락』2006년)
『별들은 여자를 나누어 가진다』 : 불의 오르가슴(부제)
김인희의 제 2시집 『별들은 여자를 나누어 가진다』는 가히 우리 현대시사에서 『화사집』이래 가장 충격적인 시집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것은 이 시집이 표면상으로 불타는 관능의 의상을 입고 있어서가 아니다. 1992년에 등단하여 그 해에 첫 시집을 상재하고, 그 다음 해에 대산재단의 창작 지원을 받은 김인희라는 놀라운 여류시인이 불과 1년 만에 다시 이 시집을 발표했을 때, 우리의 시단은 세기말의 가장 독특하고 대담한 상상력의 출현을 어슴프레 감지하는 정도였다. 불의 오르가슴이라는 부제를 지닌 이 시집은 50년 전의 화사집이 우리 문학사에 던진 충격에 결코 뒤지지 않는 놀라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윤재웅 (동국대교수, 95년 11월, 월간 ≪현대시≫)
김인희 시인의 특집은 본지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 잡지에서 특집으로 다루려고 하였으나 시의 난해성과 필자난 등으로 계획이 여러 번 무산되었다. 허혜정씨는 김인희 시인의 3시집, 『여황의 슬픔』 에 대한 장문의 서평을 보내왔다. 김인희는 우리 시단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광활한 우주론적 상상력을 펼치는 시인이다.
― ≪현대시≫(1997년 9월)
제 3시집 『여황의 슬픔』 : 몸의 비밀, 시의 비밀
그녀의 독서량과 직관의 깊이와 사유의 폭이 일반 교양인들의 범상한 수준을 상당히 벗어나 있기 때문…신화학과 심리학과 현대이론물리학과 동양사상을 한꺼번에 휘둘러서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예비하는 담론…통합적인 사유…시인 김인희만큼 대담하며 확고부동하게 우주와 인간의 역사 및 그 비밀에 도전한 시인을 20세기 한국문학사에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의식을 받쳐주는 학문적 토대는 철학, 신화학, 심리학, 물리학, 언어학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중략…) 내가 그녀에게서 느끼는 경이로움은 사유의 규모와 대담함과 적어도 다섯 가지 이상의 학문을 존재론적 담론의 자리에 모아 그것을 한자리에서 동시에 출발시켜 동시에 한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그녀의 사유방식과 그것을 이 불모의 땅에 심어보려는 노력과 그 노력을 언술화하는 용기이다. 이 언술의 형식은 단언하건대, 우리 문학의 역사에 있어서 초유의 사건으로 부를 만하다.(…중략…)그녀는 일반적인 시의 수사술과 관습에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현대시를 현대시답게 하는 역설, 아이러니, 풍자, 알레고리 등과 같은 기교는 시의 형식상 중요하지가 않다. 그녀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시원과 본질에 대한 현대적 각성이다. 그녀는 이를 위해 신화를 원용하기도 하고 점(●)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기하학적 도형들로 의식이 전개되다가 다시 점(●)으로 끝나는 “의식 기하학”이라는 독특한 이론을 전개하기도 한다.(…중략…)그녀의 시편들을 접하는 것은 사념의 깊숙한 여행이며 시의 비밀에 대한 의식의 무서운 탐구임에 분명하다.(…중략…) 세상을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고 김 인희, 그녀처럼 자신 있고 당당한 목소리로 말해 본 경험이 없다. (…중략…) 시인 김인희는 현대사회에서의 시의 쓸모없음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시만이, 오로지 시의 언어만이 생명의 유기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혁파하는 유일한 의식의 현현체임을 주장한다.
― 윤재웅(동국대교수), 1997년 1월호.
『현대시』가 읽은 이 달의 시집, 일부
― 신화 및 원형과 관련하여 가장 치열하게 형상화 한 사례들
만약 어떤 시인이 원형을 잘 다루고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저 아득한 신화시대의 기억술사의 직분을 상속받은 후예일 것이다. 이 분야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시인은 김인희이다.
그녀가 발표한 일련의 시집들이 지향하는 세계는 우리 시문학사에서 전무할 정도로 독특한데, 그 독특함의 성격은 바로 저 현연의 세계로 입사하는 것이다.
−『詩論』 p.343 (집필참여 : 최승호 ․ 김윤정 ․ 손진은 ․ 금동철 ․ 이미순 ․ 박현수 ․ 고현철 ․ 김경복 ․ 김종태 ․ 홍용희 ․ 이재복 ․ 이혜원 ․ 맹문재 ․ 김행숙 ․ 윤재웅 ․ 유성호)공동 엮음
『여황의 슬픔』 :
용과 스핑크스, 그 언어의 신화
김인희의 시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녀의 시가 ‘모든 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내가 그녀의 시를 읽게 된 이유였고, 또 이글을 쓰게 된 까닭이다. 나는 김인희의 시를 읽으면서 광휘를 느꼈다. 피가 달렸다. 왜 그녀의 시에 대해 말하지 않는가? 나는 이 감동을 기술하는 것이 거의 의무적이라고 생각한다. 김인희는 모든 사유에 대한 난폭한 사유자다. 그녀의 시는 원형적인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섹스의 검은 힘이 폭발하듯, 대지 위의 에로틱한 향연이 우주적 판타지로 펼쳐진다. 이미지는 힘차다. 몰락한 악단처럼 시를 조잘대는 자들을 경멸하듯이, 막다른 줄에 있는 자가 분노하며 의자를 걷어차듯이, 꺼져버려, 사이비야! 부르짖듯이.
김인희의 시세계는 컴퍼스처럼, 방향은 정확하면서도 둥그런 원환을 그린다. 대지는 태양의 가시광선에 꿰뚫리며, 그 완전한 충만으로 창조의 씨앗을 새롭게 뿌린다.
대지는 신의 얼굴이 찍혀 있는 성스러운 천이며, 시인의 언어가 되돌아가야 할 어머니의 땅이다. 이 아름다운 모어를 수태하는 시인은 언제나, 운명을 신화를 반복하는 것이다.
― 허혜정(한국사이버대학교 교수 시인, 평론가, 97년 9월 ≪현대시≫)
『여황의 슬픔-용다래』 :
제의와 축제, 연민과 고통
김인희의 세 번째 시집 『여황의 슬픔-용다래-』만큼 도전적인 시집을 나는 아직 읽은 적이 없다. 이 시집의 출간은 백년이 채 못돼는 한국 현대 시문학사에 있어서 이상의 「烏瞰圖」발표 이래 또 하나의 사건(…중략…) 인용한 부분(장시 「불의 오르가즘」에서 그대로 가져온 부분)에서 볼 수 있는 많은 호격과 명령어가 떠받치는 웅혼한 시풍과 도도한 전개는 역사를 〈아〉와〈비아〉의 투쟁의 기록으로 파악한 신채호의 「용과 용의 대격전」을 연상시킨다. 그만큼 웅장하고 현란하다.
아무튼 서시 「여황의 슬픔」을 비롯한 66편의 연작시로 이루어진 시집 『여황의 슬픔』 은 종래에 나온 모든 시집과 다음 네 가지 점에서 크게 구별된다. 첫째, 현대물리학 기하학 심리학 생태학 신화학 기독교 사상 인도 고대사상 등에 관한 충분한 지식이 없이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중략...)
시집의 시적 화자 〈소희야〉는 소피아(지혜)의 우리식 발음이다. 더럽혀진 성전의 해체로 세계는 종말을 맞는 것이 아니라, 여성인 소희야의 오르가즘을 통해 결국 아들을 얻는다. 많은 용, 많은 사내를 만나 결합하고 회임하고 출산한다. 더럽혀진 성전을 복원시키고 세계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대지신인 여성의 위대한 힘이다.(…중략…)김인희의 야심찬 세 번째 시집은 새로운 평가를 기다리고 있는, 한국 시문학사상 미답의 창고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창고는 헛간이 아니라 보물창고일 것이다.
― 이승하(중앙대교수, 시인, 평론가, 97년 ≪문학정신≫ 겨울호)
『시간은 직유 외엔...』 :
에로스와 타나토스, 그리고 로고스
― 잃어버린 신화의 회복 −네트로피 문명(어머니의 법칙)으로 이끈 시집
김인희 시인의 경우는 우선 구조주의의 입장에서 출발한다. 구조주의는 표층구조에 내적원리로 작용하는 심층 구조에 주목한다. 구조주의에 따르면 이 세계는 사물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관계’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구조란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의미하며 그 관계는 변증법적이다. 구조주의적 입장에서는 ‘요소’를 전체와의 관계를 통해 파악함으로써, ‘요소’는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관계’를 인식할 수 있다고 본다. 부분의 요소는 전체의 구조 안으로 통합될 때 의미가 있고, 비로소 인식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존재나 경험이라도 그것들이 전체를 형성하고 있는 ‘구조’속에서 이해되지 않는 한 완전한 의미는 파악될 수 없다. 따라서 구조주의적 시각의 궁극적 추구 대상은 인간정신의 영속적 구조를, 세계를 체계화하는 범주들과 형식들의 추구라고 할 수 있다.”(이선영 ) 시인이 “문학의 특별한 가치란 일상 언어에 기반을 둔 표준기대를 어긋나게 함으로써, 우리의 언어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세상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주는 묵시적인 관례와 규약을 훤히 들여다보게 하는 데 있다.”는 말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구조주의적 인식이 유의미한 이유는 “변천하는 시류에 대해서 인간의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생기하고 소멸하는 현상 속에서 불변의 법칙을 찾아낼”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이 현상을 지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삶의 주체로서의 시인도 마찬가지이다. 이 “불변의 법칙”은 의식계의 언어체계(표층구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계의 언어체계(심층구조)에 존재한다. 또한 시 쓰기는 이 시집의 제목이 상징하듯이 자족적인 것에 그치거나 단순히 기표의 선택과 배열의 문제가 아니라 기의의 사회적 생성과 소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시집의 주석들은 이런 소통을 위한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인희 시인은 이러한 구조주의적 사유에서 출발하여 “의식기하학”이라는 독자적인 이론체계를 구축하였고, 이 방법론에 따라 언어의 재현과정을 무의식계적으로 형상화하는 신화를 선보이고 있다. 르메르의 말처럼 “구조만이 사유를 하나의 지형학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며 “수많은 언어들이 저 기하도형의 언어로부터 탄생되기”(「파란게와 어린이」)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이 김인희 시인의 시작(詩作)의 출발점이자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이 시집에서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시집이 언어의 힘, 시의 힘을 복원하는 일종의 방법론이라는 점이다. 그 방법론은 기억의 체계를 따라 ‘아버지(언어)’를 복원하기 위한 방법으로 ‘어머니(소희야)’와 결합(통합)하는 것이다. 기억의 체계를 재현하는 것은 잃어버린 신화를 회복하는 길이다.
관능은 ”어둠 속(무의식의 창고)에서 에너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존재 방식“이다. 이러한 죽음과 부활의 공간이 동굴(무의식계)이며 그 시작과 끝은 겨울강(언어)이다.
이 시집의 제 4부 <신화神話-3일간의 사랑>은 이러한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기표/기의>, <의식/무의식>, <문명/자연>나아가 <언어/인간>, <시/삶>, <신화/현실〉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아버지(겨울강, 언제나 대지의 처음과 끝에 서 있는 존재) -소희야(어머니의 분신, 새신부)-가을빛(세상남편, 아들)>의 신화적 구조로 재구성해 내고 있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시인의 말을 빌자면 의식적 체계에서 언어의 분열을 일어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에너지 체계에서 에너지를 운동하게 하는 법칙이며 에너지의 근원임을 의미한다.
김인희 시인은 서시序詩에서 “너무나 하잘 것 없는 개망초꽃에 대한 연민이 한 발은 천상에 한 발은 지상에 머물게 하여 날마다 시의 나라, 그 산을 오른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르는 것은 단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를 복원(회복)하고자 함이다. “온몸에 찍힌 아버지의 명령”, 그 문신(기억)을 더듬어 이를 해석(재현)하려 한다. 이를 위해 김인희 시인은 “헌신과 희생의 연속이었던 그리움의 나날들을 보내며(제1시집) 겨울강을 바라보는 소희야의 눈빛 속에 빛처럼 빠른 기억의 두루마리를 펼쳐내고(제2시집), <그>와의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제3시집)를 순결하게 재생한 후, 이를 통해 <그>와의 역사를 새롭게 재구성(제4시집)해”낸다. 이러한 작업의 궁극적 목적은 “이 우주 혹은 언어가 존재할 수”있게 하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내재해 있는 원초적 에너지를 부활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그 부활은 힘과 변화를 상징하는 ‘엔트로피 문명(아버지의 법칙)’을 지혜와 조화를 상징하는 ‘네트로피 문명(어머니의 법칙)’으로 이끈다.
이렇게 본다면 김인희 시인의 이번 시집은 그 동안 제 3시집까지 끊임없이 던져왔던 담론들, 즉 시와 언어, 언어와 인간, 인간과 문명에 대한 대안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강원갑(평론가, 계간 ≪시선≫ 2007년 겨울호)
제 4시집 『시간은 직유 외엔...』 :
언어의 본질을 찾는 여행
이 세계에서 「관계」와 「대화」를 삭제한다면 신도 인간도 자취 없이 사라질 것이다. 「관계」와 「대화」 그 자체인 김인희의 기하도형의 중개언어들은 상징계를 채우고 있으면서 상상계와 상징계를 중계하는 기하도형의 집단언어들이다.
이번 4시집, 『시간은 직유 외엔...』 에서 김인희는 라캉이 레비스트로스의 인류구조에서 차용하여 언어 혹은 정신분석의 도구로 삼은 삼각형의 오이디푸스 구조가 엔트로피구조라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이 무의식계에서는 어떻게 운동이 이루어지는가를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는 신화(神話)를 쓴다. 그리하여 마침내 삼각형을 뒤집은 역삼각구조를 시공간재생의 구조로 채택하고 이것으로 신인류가 몸담을 새로운 문명체계를 신화라는 장르를 통해 풀어 보인다.
김인희에게 있어 무의식계와 시공간은 이미 통일되어 있는 상태에 있으므로 무의식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부활한다는 것은 곧 시공간재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도저히 손댈 수 없을 것 같았던 현대문명의 치유를 예고하면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과 거듭남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설정으로 보여진다.
시를 통해 우주의 비밀에 도전한 김인희는 언어의 질료인 의식을 해부함으로써 상상계와 상징계, 의식과 무의식, 물질과 의식이 하나로 통합되어 상징이나 은유가 사라진 실재계에 인류를 인도한다.
욕망의 형태와 언어의 형태가 겹쳐진 기하도형의 집단언어들을 체계적으로 펼쳐놓은 것을 그녀는 ≪언어게놈지도(3시집, 저자후기편)≫라 부르며 이를 바탕으로 이번의 4시집, 『시간은 직유 외엔...』 에서 언어의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신화神話 구조를 모색한다. 그녀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현대성을 앓고 있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언어체계와, 자신이 발견한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언어체계를 통합하여 신화神化된 언어를 보여줌으로써 사랑을 완성하고 로고스를 찾는 여행을 마친다. 즉 재현의 언어체계를 출발시키는 것으로 그녀의 로고스를 찾는 여행은 끝난다.
― 정신재 (평론가, 한성디지탈대 교수, 『시간은 직유 외엔...』 해설 편에서)
『시간은 직유 외엔...』 :
오이디푸스의 일레고리
김인희의 최근 시집 『시간은 직유 외엔...』 에서 1,2,3부는 대체로 오이디푸스콤플렉스와 관계있고 ‘4부, 신화神話-3일간의 사랑’은 엘렉트라 콤플렉스와 관계있다.
프로이드의 오이디푸스 상황은 라캉의 상상계 및 지라르의 삼각형의 욕망(혹은 삼원적 구조)과 대체의 관계에 있고, 슈퍼에고는 라캉의 상징계 및 실재계와 대치의 관계에 있다.
『시간은 직유 외엔...』 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념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상징, 혹은 알레고리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알레고리가 압도적이긴 하지만. 문제는 이론을 의식하고 시를 썼다는 것이다. 프로이드, 라캉, 지라르를 의식하고 시를 썼다는 것이다.
장점은 위의 전제들과 관계되는 것으로 ‘굉장한 개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의 시편들 중에서 이만한 알레고리의 시편들을 보지 못하였다. 은유, 환유, 아니러니, 역설들만이 시의 주요 세목들이 아니다. 알레고리 역시 시의 주요 세목이다.
부분적으로 김인희의 시세계는 해소되지 못한 오이디푸스 상황과 해소된 오이디푸스 상황의 길항이라고 할 수 있다. “분열과 통합”이 김인희 시세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성의 정점에 분열이 있다는 점에서 김인희의 시편들을 현대성의 정점에 있다고 단정할 수 있다.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생명성의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 박찬일(평론가, 추계예술대 교수, 2008년 2월 월간≪현대시≫커버스토리 중에서)
『시간은 직유 외엔...』 :
엘렉트라 콤플렉스 혹은 아니무스와의 통일
김인희의 사랑은 금기 위반의 근친상간적 소망충족으로 무한히 미끄러져가 초자아가 지배하는 질서의 세계를 전도 파괴시켜 새로운 신화를 건설해가고 있다. 따라서 육체적 금지의 영역을 침범한 김인희의 사랑은 사랑을 위한 사랑의 운명적 제의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의 형식을 신화로 고양시켜 이 세계 전체로 새롭게 운행시켜 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학을 통한 신화의 재현전화에 해당하는 사랑과 신화의 변증법적인 운동인데, 김인희는 이 양자를 교묘히 조합 발효시켜 사랑과 신화를 동일성으로 고양시켜 가고 있다.
김인희의 시적신화는 카오스에서 로고스로의 창조적 신화가 아니라, 이미 생성되어 있는 엔트로피적으로 소진된 신화를 재귀 부활시킨 것으로 이해하여야만 한다. 김인희 신화는 역사의 시작이나 대지의 창조가 아니라, 그 역사 그 대지가 기운을 잃어 도도히 흘러 넘쳐나지 못할 때, 모든 것이 사라져버릴 운명에 처해 있을 때, 새롭게 비등하는 네겐트로피적 신화의 재건에 해당한다.
김인희의 장편 서사시는 그가 지향하는 사랑의 본질을 정확하게 언표하고 있다. 사랑은 무엇인가. 시인은 말을 통해서 신화적 세계의 창조적 완성을 이룩해간다. 따라서 말은 의식계와 무의식계를 동시에 아우르면서 시적 인간 김인희의 형벌적 사랑을 완성시켜가고 있다.
말이 완성될 때, 신화적 사건성도 종료된다. 말은 신화가 재신화화 된 이후 이내 종료하게 된다. 재현된 신화 속으로 말이 사라질 때, 실재계가 작동하고 세계는 오욕칠정의 욕망으로 훼손된다. 남는 것은 관능과 오르가슴적 열락이다. 김인희의 사랑학은 의식계와 무의식계를 동시에 아우르는 말의 신화학이다. 시인 김인희는 그 말/언어를 통해서 순결한 이 대지의 투명한 역사를 읽어내는 동시에 완전한 세계창조의 순간을 재현하고 있다.
『시간은 직유 외엔 그 어떤 것으로도 나를 해석하지 말라하네』는 하나의 종결된 신화적 사태가 아니라, 우로보러스(Uro−borus)처럼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재귀하는 역동적인 신화운동으로 짜여져 있다. 세상으로 끊임없이 흘러넘치는 투명한 영혼, 불굴의 의지로 견고함을 지향하는 초인, 겨울강은 투명한 영혼을 소유한 신화적 초인이다.
― 김석준(시인, 평론가. 계간 ≪서시≫ 2008년 봄호)
시간과 고요 속의 존재(자)
시인 김인희에게 있어서 시간은 주체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대상이다. 하이데거가 자신의 모든 철학을 존재(자)에 응고시켜 형이상학의 존재론적 근거를 탐구하다 시간 앞에 걸려 넘어져 자신의 철학을 와해시켰다면, 김인희는 존재(자)의 존재성을 무로 수렴시키는 그 모든 시간의 운동을 주체적 의식으로 제어 지배하면서 시간의 궁극적 본질에 이르고 있다. 헌데 시 「시간은 한 공기의 내 밥」이 재미 있는 점은 시간을 상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시간의 바깥에서 시간이 벌이는 행태를 주밀하게 관찰하면서, 시간 전체를 시인의 의식의 공간 내부에 가두고 있다. 하여 시간은 그것이 담기는 그릇에 따라 그 존재론적 양태를 달리하게 된다…시인 김인희는 ”중력“과 ”욕망“이라는 함수를 통해서 시간의 전후좌우를 마음껏 기롱하고 향유하면서 ”직선“으로 향하는 절대시간의 ‘운동”을 “둥근 길”로 만들어 버린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증명했던 것처럼, 모든 운동은 직선이 아니라, 곡면 위에 기술된다. 공간도 시간도 빛의 운동도 궁극에는 모두 휘어져 하나의 점으로 응고되게 된다…따라서 향유만이 시간 앞에 스스로를 주체로 위치시킬 뿐만 아니라, 궁극에는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게 된다. 시간이 한 공기의 밥으로 표현되는 한, 시간 앞에 시인은 절대적 주체이다.
― 김석준(산업대 강사 시인, 평론가
2010년 9월~10월 시사사 포커스에서)
현재 한국적 상황에서의 김인희의 시세계
김인희의 시세계는 그야말로 독특하다고 밖에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근데 과연 이러한 독특함이 우리 시단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받아들여진다면 왜 받아들여지는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왜 받아들여지지 않는가에 대한 생각을 좀 해봐야 되지 않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현재 한국적인 상황, 풍토에서는 참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사유를 집적해 놓고 있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략…)시적언어로서 신화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다, 라든가 혹은 철학적인 담론을 가지고 시로 표현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은 제 생각에는 세 가지 정도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시간이 이 시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시간은 선제적인 시간일 수도 또 비선제적인 시간일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김인희 시인이 꿈꾸고 있는 것은 아까 말씀드린대로 가장 원초적인 세계, 거기에는 시원의 세계가 있고, 태초의 세계가 있고, 그런 깨끗한 순연의 세계를 탐험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략…)김인희 시인이 여기서 꿈꾸고 있는 세계는 태초에 자궁의 이미지, 우주의 생산적인 이미지를 시속에서 담아내려고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거대한 담론을 담고 있는데 이런 것들의 시적인 비유나 은유로서의 의미는 어떤 것이냐, 우리시에서 이렇게 한 것은 없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그게 가능할 것이냐,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김인희 시가 독특할 수밖에 없다, 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예를 들어 우리시와 서구시를 비교해서 말씀 드리면 김인희 시가 갖고있는 강점은 이겁니다. 첫째는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입니다. 한국시를 보십시오, 여성시를 보십시오. 전부 일상성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주변성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인칭 자체가 3인칭이며 관찰자적 시선을 취한다든가 전부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자체를 해석할려는 해석자의 시선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인희 시는 자기 주변에 있는 것들에 대한 것들을 전부 소멸시키고 본인이 답을 내릴 수 있는 답안을 갖고 있는 굉장히 철학적인 사유지요.
제가 볼 때는 이것만으로도 우리시가 나아가야할 지향성을 담아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학적이든 반미학적이든 그것은 상관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 시가 갖고 있는 철학적 사유의 빈 면과 내면적 깊이의 본질을 여기서 어떤 음성으로 들려주는 가를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김인희 시의 작업들은 당분간 발견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일 수도 있고 김인희 자신의 책임일 수도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만 제가 이 자리에 서서 감히 말씀을 좀 드리면 시집도 우리가 발견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왕에 나와 있는 것을 우리가 발견을 해서 눈 밝은 비평가들도 그런 생각들이 김인희 시인이 담고 있는 세계가 무엇인가를 잘 파헤쳐 줘서 우리 시에 보탬이 되는 어떤 것들을 해줘야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분명 그런 요소가 있다라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김인희 시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우리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그 시선이 권력적 시선이든, 편협된 시선이든, 담론의 시선이든, 한국 시에 매몰되어 있는 시선이든, 자기 시세계에 천착되어 있는 방법론의 시선이든, 그런 것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인희 시에 대해서 이 자리는 발명의 시간이 됐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더 천수하시고 정말 우리 한국시에 보탬이 되는 깊이 있는 시,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홀로 가는 길, 그래서 발자국을 만들어서 후학들이 그 뒤를 따라가서 김인희 시를 영원히 기억하는,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2007년 12월, 김인희 제4시집 출판기념회에서
― 박주택(시인, 평론가, 경희대국문과 교수)
이중섭 그림 감상시 2편에 관한 평론
「물고기, 게와 노는 네 어린이」 : 인간의 시간과 오래된 타자의 풍경
‘엎었다 뒤집을 때마다 반복’되는 순환의 시간은 ‘처음 시간’으로의 환원을 가능하게 한다. 언어가 만든 우리의 이 무의식의 원형풍경은 단지 김인희 개인적 추억 풍경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집단적 추억 풍경이다. “게를 따라 물고기와 함께 돌아온 처음시간”, 이 귀환하는 풍경은 온전히 타자가 된 시간이지만, 잃어버린 낙원으로의 회복을 꿈꾸는, 그리고 꿈꾸게 하는 알레고리로서 작용한다.
―진순애(성균관대 강사, 계간 『문학사상』2004년 3월)
이중섭의 그림 「부부」 감상 시
「부부」: 母語, 세계의 뿌리로서의 기하학의 선 김인희 시인의 시쓰기는 과학적 시쓰기로 분석해 볼 수 있다. 김인희는 이 중섭의 그림, 기하학적 선으로 이루어진 「부부」를 통해 세계창조의 뿌리가 기하도형의 선이라는 것을 나타내 보인다. 이 시편은 우주의 언어이며 생명의 언어인 母語 등의 천지창조가 이루어지게 하는 “세계의 뿌리”를 보여주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강성철(시인, 금융인, 격월간 『시사사』2008년 1-2월호)
과학철학 에세이 『언어게놈지도』 해제:
네겐트로피를 꿈꾸며
암울한 인간학적 현실을 언어를 구성하는 의식을 통해 엔트로피를 역으로 돌리고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일이 가능한가. 금번 상재한 김인희 시인의 『언어게놈지도』는 이 두 가지 문제점의 가능성을 열어 보고자 노력한 점에서 문제적인 시론집이라 할 수 있다.
우주라는 언어전체를 기하학적으로 정립하여 시간과 의식과 에너지의 방향을 돌려놓은 『언어게놈지도』는 시인의 순정한 의식이 현현된 일종의 문학사적인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면에서 김기림이 전체주의 시론을 통해서 과학적 시학을 정립하고자 했던 노력에 비견되는 김인희의 『언어게놈지도』는 언어의 내포적 의미와 그것의 외연적 사실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접시키면서 새로운 현대의 신화를 창조해낸 시론집이라 하겠다.
사실 처음『언어게놈지도』라는 원고를 마주대한 순간, 그 방대한 설계지형도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얼핏 보면 너무도 대담한 설계지형도로 인해 지적 난맥상을 형성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기실 김인희 시인이 전개한 試論적 詩論은 전무후무한 언어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때론 열역학법칙과 라캉의 언어이론 사이를 다양한 지적 층위로 상호 이접시키면서, 때론 말해질 수 없는 언설이 빚어내는 다양한 현상들을 연접의 방식으로 소통시키기도 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언어 체계를 우주론으로 심화 확대시켜가는 시인의 사유방식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말하자면 언어의 심연에 자리한 집단무의식을 “집단언어”로 언어화하여 내밀한 의식의 층위를 인간학으로 고양시키면서 그것의 외연에 위치한 다양한 학적 체계들을 언어의 얼개로 구조화시키는 그 방법적 전략이 신기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시인에게 언어는 훼손된 문명을 치유하는 생명의 에너지이고 에너지는 언어의 다른 이름이다. “언어의 틀과 시스템”을 “생명, 생태, 여성성 등으로 분리된 것들을 모두 통합”하는 궁극적인 주체로 간주하고 있듯이, 시인 김인희는 자신의 시론적 시론 전체를 엔트로피에서 네겐트로피로 그 에너지의 흐름을 완벽하게 전환시키고 있다 하겠다.
김인희는 여황의식이라는 음녀성을 통해서 새로운 시공간을 정초하기에 이른다. 모든 것이 수용되고 또 에너지로 응축된다. 블랙홀이라는 마성적인 공간처럼 고밀도의 압축이 이루어지고 또 빅뱅처럼 생명의 대폭발운동이 전개된다. 엔트로피가 네겐트로피로 전환되었으며 “부활의식”에 의해 “영원한 생명”이 생성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나타난 물질과 에너지의 역학관계를 입자물리학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 의식기하학은 현대물리학에 대한 도전적 試論이자, 이 세계를 새롭게 정의하고자 하는 객관적 성과물이라 하겠다.
물론 아인슈타인이 열망했던 대통일장이론이 미완성인 채, 하나의 가설로 남아 있지만, 김인희 시인의 의식기하학은 현대물리학의 난제들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응결시킨 역작이라 하겠다.
김인희 시인의 시론집 『언어게놈지도』가 놀라운 점은 전혀 차원이 달라 호환이 불가능한 것으로 믿어지는 의식과 기하학을 하나의 구조로 통합하여 의식기하학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황의식을 언어의식으로 응결시키면서 거대담론을 형성시켜가고 있다. 인간학이 구현되는 대지적 삶의 그 모든 초상들을 부활의식으로 구현시키면서 『언어게놈지도』 전체를 새로운 창조 신화로 서사화하고 있다.
김인희 시인의 신화는 현대성 내부를 지배하는 죽음본능에 대한 거부의 몸짓이자, 이 세계를 새로운 기의 운동으로 정의하는 부활의 운동이다.
말하자면 『언어게놈지도』 전체는 앎에의 의지가 고밀도로 농축된 지식의 저장고이자 인간학을 지배하는 무의식에 관한 담론화 작업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지고의 성과물에 다름 아니다.
『언어게놈지도』는 언어라는 거대한 바탕 위에서 창작신화를 건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시인이 시도한 “언어=물질=시공간=에너지=신화”라는 등식의 성립은 그야말로 신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 메타신화의 면목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시의 집에 언어를 새롭게 축조하고,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라 믿는 시인 김인희가 『언어게놈지도』를 뮤즈의 전당에 헌정하고 있다. 다양한 지적 편력에 놀랐고, 또 서로 인과의 고리를 맺기 어려운 다양한 지적 체계를 통섭의 언어로 응결시킨 시인의 순정한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환상과 꿈과 이상과 신세계를 언어 내부에 응결시키면서, 웅혼한 신화를 재현하고 창작한 시의 집, 『언어게놈지도』가 여기 있다.
― 김석준(시인, 평론가. 계간 ≪서시≫ 2008년 봄호)
‘사랑의 완성’으로서의 시적 존재론
―김인희 시집, 『내사랑, 흰이 돌아온다』
― 유성호
1.
김인희(金忍姬)의 시학을 평면적인 비평 술어로 해석하고 규정하고 의미화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시인 스스로 자신의 시가 연원하는 미학적 준거를 논리적으로 밝힌 글이 상당수 있는 터라, 그 논리를 따라 그녀 시편을 해석해가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러한 자기 논리를 떠나 그녀 시편을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비평적 난제(難題)에 속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김인희 시편은 우리가 항용 서정 양식에서 만날 수 있는 일인칭의 ‘고백 시편’이나 삼인칭의 ‘풍경 시편’ 혹은 시 자체를 사유하는 ‘메타 시편’을 멀찍이 벗어나 있다. 우리 시단에서 이처럼 흔치 않은 이색적 흐름을 보여주는 그녀 시편을 모은 신작시집 『내사랑, 흰이 돌아온다』(시와표현사, 2016)를 읽으면서도 우리는 이러한 난경을 재차 경험하게 된다. 그만큼 이번 시집은 우리에게 ‘다른 목소리(the other voice)’를 통해 우주와 언어의 기원(origin)을 상상하려는 시인의 야심찬 기획을 구체화한 결실로 다가온다. 평균적 범속성에서 한껏 벗어나, 자신만의 외따로운 작업을 지속해가는 김인희 시인의 시적 자의식이 진하게 묻어나는 결과물인 셈이다.
이번 시집에서 김인희 시인은 우주의 에너지가 견지하고 있는 독창적 이디엄이라고 할 수 있는 “흰”이라는 이미지를 퍽 열정적으로 구상해간다. 집단 기억의 기운을 띤 이미지로서의 ‘흰’은, 그녀 시편에서 부단히 우주의 최초 에너지로 환원되면서, 이때 발원하는 집단무의식의 편린들로 하여금 개별 시편으로 쏟아져 나오게끔 해준다.(…중략…)
김인희 시인은 우주와 언어와 존재의 기원으로서의 ‘흰’의 계열체들을 시집 곳곳에 배열해간다. 가령 그것은 “지금은 사라진/내 첫사랑이 살던 흰 마을, 太白의 어느 고원”(「고원마을, 太白」)이나 “세상의 모든 빛을 빨아들여/“흰”을 뿜어내는 골짜기” 혹은 “太白, 큰 흰 마을”(「흰 직각의 마을」) 등으로 현현한다. 모두 높고 크고 빛나는 공간적 상징이다. (…중략…) 김인희 시학에서 ‘흰’이라는 원형 심상은, 존재의 기원과 궁극을 아우르는 순결함과 거룩함과 영광스러움의 지점을 모두 상징해내고 있다. 그 ‘흰’이 귀환해오는 궤적이 말하자면 김인희 시학의 가파른 도정과 고스란히 등가가 되는 셈이다.
2.
이처럼 돌올한 개성을 가진 김인희 시편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여러 독법(讀法)이 수평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정신분석의 방법이나 구조주의적 비평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흰’의 존재론과 방법론이 결속한 결실로 이번 시집을 계속 읽어야 하는 과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다음 표제 시편을 통해 그 심연으로 들어가 보자.
강들은 맑게 희어지고
시간의 처음에
희어진
내 사랑 흰이 오고 있다
우주의 꼭대기, 직각의 마을에 곧 당도할 것이라는 소식이 왔다.
태백의 6월에 하얀 조팝나무꽃 빛무리들이 고원의 들판 가득히 쏟아진다
한강과 낙동강, 두 줄기 강이 여기 ‘큰 흰[太白]’으로부터 흘러 나간 후
밤마다 등을 밝히고 강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곳
멀~리 떠난 강들이 맑게 희어져 돌아오는 계절은 겨울
나는 그를 ‘흰 강’이 아닌 ‘겨울강’이라 부른다
내 시집들은 잃어버린 겨울강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희어진 강, 희어진 계절에 돌아온다던 그와의 약속을 잊지 않으려
내 시집은 온통 잃어버린 겨울강의 형상화로 가득하고
그와 함께 했던 고향의 묘사로 가득하다
강들이 맑게 희어지고
온 우주를 방황하던 그가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들판과 집들이 모두 ‘흰’을 입을 때
강들이 시작된, 강의 근원 태백의 때에
흰, 말(言語)을 타고 고원을 달려 그가 돌아오는 모습 저 멀리 보인다
조팝나무 흰 꽃들을 고원의 들판 하나 가득 거느린 그가
눈부신 하얀 갈기 날리며 강의 근원을 향해 뛰어 오르는 말(言語)을 타고
고원의 들판을 달려오는 모습
마침내 그가 돌아오고 있다
큰 흰으로.
― 「흰」 전문
이 아름다운 시편은 ‘흰’을 “시간의 처음에/희어진/내 사랑”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앞에서도 살핀 “우주의 꼭대기, 직각의 마을”에 도착하게 될 ‘흰’은, 자연의 빛이 고원 가득히 떨어지고 강줄기도 “여기 ‘큰 흰[太白]’으로부터” 흘러서 결국에는 맑게 희어져 돌아오는 순간을 대상(代償)하는 확연한 이미지이다. 김인희 시인은 그 이미지가 구체화하는 공간을 ‘겨울강’이라고 명명하는데, 그 ‘겨울강’으로 이번 시집은 단연 빛을 발한다. 왜냐하면 “희어진 강, 희어진 계절에 돌아온다던 그와의 약속”은 시인으로 하여금 “잃어버린 겨울강의 형상화”를 재촉하게끔 하고, 나아가 “온 우주를 방황하던 그가 돌아온다는 연락”을 통해 시인은 “모두 ‘흰’을 입을 때/강들이 시작된, 강의 근원 태백”으로 귀환하는 순간을 목도하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이처럼 언어나 존재의 기원을 향한 ‘겨울강’으로의 역류는, 때로 “눈부신 하얀 갈기 날리며 강의 근원을 향해 뛰어 오르는 말(言語)”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때 ‘흰’은 “둥근 시간의 반대편에/빛나는/흰/기억의 다발”(「그녀의 머리칼 위에 흰 눈이 쌓이네」)이거나 “새롭게 태어난 시간의 탄생/흰빛 아우라”(「하얀 산정」)이기도 할 것이다. 아니면 “어느 서책에도 씌어 있지 않은/날 선/흰/강들의 길을 열어주기 위한”(「바다의 고요」) 고요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공간적 은유가 바로 ‘겨울강’인 것이다. 이때 우리는 지난 시집에 실린 다음 시편을 상호 텍스트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겨울강이 흐르던 곳
그곳에 흐르던
차디차고 싸아한 공기
드높고 맑은 곳에서 흘러온
푸른 갈기 흩날리며
내 말은 뛰어오른다
푸르거나
흰
칼이거나
빛
내 말의 푸른 갈기가
비수처럼 번쩍이는
겨울강은 흘러
차디차고 싸아한 공기
온 세상으로 흘려보낸다
― 「겨울강」 전문(『시간은 직유 외엔...』 중에서)
『』
김인희는 ‘겨울강’이 흐르던 곳에서 “푸른 갈기 흩날리며” 뛰어오르는 ‘말(언어)’를 기억한다. 그곳은 자연적으로는 그녀 고향인 태백산 줄기일 수도 있겠고, 가장 원형적으로는 우주적 시원(始原)의 거점이기도 할 것이다. 원초적으로 그것은 “푸르거나/흰/칼이거나/빛”이었다. 이때 ‘칼’은 모든 세상을 베고 ‘빛’은 모든 세상을 감싼다. 그렇게 “말의 푸른 갈기가/비수처럼 번쩍이는/겨울강”에서 시인은 자신의 ‘칼’이자 ‘빛’인 언어를 세상으로 흘려보낸다. 바로 그 ‘겨울강’에서 시인은 “눈부신 하얀 갈기 날리며 강의 근원을 향해 뛰어 오르는 말(言語)을 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번 시집의 다른 시편에서도 김인희는 “겨울강은 흘러/시간이 강의 처음으로 귀환하고 있는 오후”에 “그녀의 눈부시게 희어진 머리칼/강의 처음에 흰 눈이 내리고/하얀 시간이 땅을 덮고”(「그녀의 머리칼 위에 흰 눈이 쌓이네」) 있는 시간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 점에서 김인희에게 ‘겨울강’은, 시적 상상을 가능하게 하고 그것을 결국 가장 근원적인 형상으로 귀일하게 만들어주는 편재적 거소(居所)가 되어준다. 그래서 ‘겨울강’은 어떤 의미에서는 “실존의 옷을 벗고 다만 기억만으로 흐르고 있지만 그 강물은 존재의 마을로 흘러올 강”(정신재)인 셈이다.
이러한 강의 흐름을 통해 김인희가 닿고 싶어 했던 궁극적 대안(對岸)은, 일찍이 시인이 제4시집 후기에서 밝힌 대로 “사랑의 완성”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시쓰기가 “사랑의 완성을 위해 죽음에서 다시 일어나는 일”이며, 자신은 “우주의 꼭대기, 전자 한 알갱이도 쪼개고 갈라 그곳에 올라서서 우주를 한 눈에 내려다보고 선 여자”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인은 ‘사랑의 완성’으로서의 시적 존재론을 ‘흰’의 존재론과 방법론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
김인희는 시력(詩歷) 25년 동안, 1992년 첫 시집 『아담의 상처는 둥글다』를 펴낸 데 이어 『별들은 여자를 나누어 가진다』1994), 『여황의 슬픔』(1996), 『시간은 직유 외엔 그 어떤 것으로도 나를 해석하지 말라하네』(2007) 등을 펴낸 우리 시단의 중진 시인이다. 그리고 거의 9년 만에 이번 시집을 냈다. 그녀의 이러한 외로운 탐색과 결실에 대해 그동안 비평적 굴착은 매우 드물었거니와, 이번 시집은 이러한 비평적 편향에 대해 새로운 균형을 요청하게끔 하는 적실한 성과라고 생각된다.
일찍이 그녀는 『아담의 상처는 둥글다』 에서, 의식과 무의식을 가로지르며 무수한 변형체를 만들어내는 원체험을 고백하면서, 물질적 상상력이 무의식을 표상하는 과정을 우주론적 생성 소멸의 과정으로 전치(轉置)하는 대담한 시적 기획을 치러냈다. 이를 두고 시집 전체가 “하나의 완결된 구조물”(이형기)이었다는 평가가 이미 있었다. 그만큼 그녀는 집단무의식을 통해 언어의 본질을 탐색하는 첫 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벌써 20년도 넘은 오래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이어서 김인희 시인은 두 번째 시집에서 ‘몸’과 ‘관능’의 움직임으로 귀착하는 언어와 존재와 시간의 본질 찾기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제3시집인 『여황의 슬픔』 에서는, 기억의 운동이 집단무의식을 오롯이 담아내면서도 언어의 기원을 암시하고 추적하는 일련의 과정임을 알려주었다. 이때 시인은 욕망과 언어가 겹쳐진 형상을 통해 언어와 존재와 우주와 의식을 에너지라는 개념과 입자로 통일해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김인희의 역작인 『시간은 직유 외엔 그 어떤 것으로도 나를 해석하지 말라 하네』 에서는 그 같은 에너지의 탄착점이자 귀착점이기도 한 ‘신화(神化/神話)’를 통해, 왜곡된 우주의 질서를 치유하고 언어와 의식과 시공간을 새롭게 구성하려는 의지를 열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 신화의 과정을 통해 그녀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알레고리”(박찬일)를 개성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지난하고도 지속적인 ‘사랑의 완성’ 과정을 통해 드러난 김인희 식(式) 복화술은, 평면적인 은유 시학으로는 결코 해석할 수 없는 세계를 담아가고 있다. 오히려 그녀 시편은 가장 깊은 직관의 힘과 그것을 역추적하여 우주의 시원과 만나는 날카로운 접점으로부터 유추해가야 한다. 그럴 경우 김인희 시학은 우리 시단의 빈곤하기 짝이 없는 우주론적 형이상학에 한 범례(範例)로 기록되어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의 완성’으로서의 시적 존재론을 가멸차게 보여준 그녀의 외로된 실험과 결실에 걸맞은 비평적 탐구가 더욱 두텁고도 폭 넓게 이어져가기를 또한 기대하게 된다. 이번 시집이 그러한 작업의 개활지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시와 표현》, 1996년 10월, 유성호(한양대학교)
시간이 몸담고 있는 언어,
그 구조를 드러내기 위한 시 쓰기
김인희
제5시집 『내사랑, 흰이 돌아온다』는 우주구조에서, 물질성을 벗어난 기억을 바탕으로 이제 방금 양자화 되는 에너지의 운동에 대한 형상화를 해 본 것이다. ‘발화된 주체’를 발판으로 ‘발화하는 주체’의 형상화이다. 이것을 확대시켜 낡은 구조를 벗어나야만 하는 인류에게, ‘새로운 주체’ ‘새로운 인간’의 재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새삼 “새로운 인간을 구워내야 할 이 시기에 우리들의 문학은 너무나 먼 구세대 인간들로 가득하다. 김인희의 『불의 오르가즘』 연작들만이 이 잠잠한 문단에서 새로운 신비주의의 싹을 보여 주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라는 20여년 전, 김인희에게 쏟았던 신범순 교수의 연민과 격려가 담긴 평이 떠오른다. 처음 그 글을 읽었을 때, “새로운 인간 기획”에 대한 내 마음 속의 엄청난 야심이 들통 나 버렸을 때의 조심스러움과 감동으로 눈물 흘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 가슴 속이 다시 먹먹해진다. 윤재웅 교수는 필자가 제3시집, 『여황의 슬픔』에서 “나의 시학은 생태학적 사고를 기본으로 한다. 나의 시학은 20세기 말의 모든 사상을 포함한 인문학 전체를 총결산하는 시학이다.” 라는 “저자 후기”에서의 필자의 말에 대해 “오만한 의식을 깔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오만이 기분 나쁘지가 않다. 우리가 언제 오만해 보기라도 했는가. 우리는 아프다고, 기분나쁘다고, 아니면 이러이러한 꿈을 꾸고 싶다고 이야기만 했을 뿐이지, “세상을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고 김인희, 그녀처럼 자신 있고 당당한 목소리로 말해 본 경험이 없다.” 고 감싸주는 평을 해 준 적이 있다. 이미 20년 전에 그 분들이 나의 제2시집과 제3시집에서 예견한 평들이었다. 나는 그 분들의 예견의 말대로 제4시집의 신화를 통해 “새로운 인간을 구워냈고(신범순)” “세상을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다시 만들어(윤재웅)”내었다. 시간의 모래시계를 뒤집었으니(제4시집에서) 새로운 시간체계를 사는 인간은 “새로운 인간”으로 재현을 한 것이 되는 셈이다.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은 내용물이 바뀐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용물을 담고 있는 구조가 반대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20년도 앞서 오늘의 필자가 무엇을 쓸 것인지가 두 분 교수님의 예언적 평론에 담겨있다. 그 두 분의 칭찬이 담긴 글을 다시 읽는 순간, 순결한 내 무의식세계 속의 그가 돌아와 내 어깨를 감싸고 토닥이며 칭찬해 주는 것처럼 들린다. “오래 참고 기다렸구나, 내 신부여!” 이 ’예언적 칭찬“을 떠올리는 것으로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세상에서 가장 큰 칭찬을 받으려고, 오직 그것 외에는 아무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나의 모든 지난날에 대한 보상을 다 받은 듯, 가슴 속 하나 가득 평온이 찾아온 것을 느낀다.
―자선 시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