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빈 오록(Kevin O'Rourke) 선생님, 대산문학 번역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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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2-02 14:10 조회3,20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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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특집
캐빈 오록(Kevin O'Rourke)
본지는 1회 수상특집으로 캐빈 오록(Kevin O'Rourke) 선생님을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본지의 번역위원이기도 하시며, 2017년 대산문화재단의 대산문학상 번역부문에 선정되기도 하셨습니다. 본지로서는 큰 에너지를 받았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기로 하신 것과 그동안 한국문학을 번역하여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해오신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과 함께 다시 한 번 이 지면을 통하여 축하의 인사를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캐빈 오록(Kevin O'Rourke)
이번 대산문학상 번역 부문(영어)에서는
『The Book of Korean Poetry : CHOSŎN DYNASTY 한국시선집 : 조선시대』
(맹사성 외 作, Stallion Press刊, 케빈 오록 Kevin O'Rourke 英譯)가 선정되었다.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이규보, 정철, 윤선도의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는 캐빈 오록 교수는 경희대 명예교수이며 국내 첫 외국인 국문학박사이다.
그는 조선 시대 한시와 시조, 악장, 가사 등 600여 편의 시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 선집 『The Book of Poetry : Choson Dynasty』 번역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오록 교수는 “고전 시가는 한국의 커다란 문화적 재산”이라고 했다.
조선의 시가보다는 신라와 고려의 시가가 위대하다.
조선시대 시기는 유교 이념에 따라 이성과 도덕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상상력이 억눌려서다. 특히 “한국의 가장 위대한 시는 선시(禪詩)들”이라고 했다.
말할 필요 없이 보는 것만으로 뜻이 통해서다.
가장 어려웠던 번역은 윤선도의 연시조 〈어부사시사〉라며 “보편적 내용의 시 구절을 구체적인 영어로 옮기려다 보니 만족스러운 번역을 얻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했다.
약력
1939년 아일랜드
1964년 아일랜드 성 콜롬바노 외방선 교회 신부로 한국 입국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
경희대 영문학 교수 역임
현재: 번역가, 경희대 명예교수
수상
1986년 제1회 동서문학상
1989년 대한민국상 본상 수상
1993년 대산재단 문학창작 번역지원 수상
2017년 대산문학상 번역부문 수상
번역: 소설 『광장』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향가』와
우리 현대시 2,000여 편을 영역.
역서
『Ten Korean Short Stories』
『Where Clouds Pass By』
『Cho Byunghwa Selected Poems』
『The Square』
『Tilting the Jar: spilling the Moon』
『Our twisted Hero』
『Singing like a Cricket; Hooting like an Owl, Selected Poems of Yi Kyubo』
『Poems of a Wanderer Midang So Chongju』
『The Book of Korean Shio』
『Mirrored Minds: A Thousand Years of Korean Verse』
『The book of Korean Poetry: Songs of Shilla and Koryo』
『The Music of What Happens』
『Looking for the Cow』
『Songgang kasa』
『100 Love poems from Old Korea』
『Selected Poems of Kim Sakkat』
『Lee Chondo The Truth Seeker』
『The Book of Korean Poetry : CHOSŎN DYNASTY』 등.
다음의 신문 기사는 본 웹진의 발행인인 김인희가 1993년 대산문화재단의 제1회 창작지원 시 부문의 수상을 했을 때의 기사이다.
캐빈 교수님께서는 그때 나의 이름을 기억하셨는지 1998년 전화를 하셨고, 필자의 제3시집에 나오는 시 다섯 편을 번역을 하시겠다고 하여 인연의 끈이 시작되었다.
당시 모든 일간지들이 이 기사를 실었겠지만 필자가 캡춰해 둔 것이 한겨레 것밖에 없어서 이것을 여기에 올린다. 캐비오록 교수와 고창수 선생님 등 여기에 이름이 실린 분둘은 그 이후 대부분 대학교수가 되었거나 외교관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셨다. 그런데 김인희 혼자만 아무것도 아닌 신세로 남아있게 되었다. 더군다나 나를 예심에서 뽑아 주셨던 부산대 김준오 교수님과 본심에서 뽑아주신 동국대 이형기 교수님 모두 돌아가셨다. 스승도 없고, 학연은 더더구나 없는 나에게 그 두 분의 타계는 내게 많은 외로움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여기에 이 오래된 기사를 올린 이유는, 내 아픈 부위를 공개하여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작은 욕망이 작용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선생님의 오랜 노고가 빛을 보게 된 것에 대해 깊은 존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글. 김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