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도선/ 오늘이 이런 모습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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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11-07 15:48 조회1,64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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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포엠(K-POEM) 신작시
오늘이 이런 모습이구나
최도선
하늘은 늘 미세먼지로 뿌옇다
건물 밖에 서서 담배 피우는 젊은 남녀
좁은 골목에 연기 가득하다
바그다드가 에덴동산의 한 자락이었으리라고 믿고 있는
카페 여인,
‘파란 하늘 아래 푸른 물결 출렁이는 바다 그 위에 돛단배 하나’ 그려진
그림을 벽에 걸어 놓고 홀로 카페를 지키고 있다
오늘 마지막 돈을 탁탁 털어 짐 보따리 하나 들고
벽에서만 보던 바다로 향했다
생전에 한 번만이라도 탁 트인 방에 앉아보고 싶어
바다에 왔다
은빛 찬란히 부서지는 파도에 허리가 출렁거린다
모래사장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래로 방을 꾸몄다
카페에서 듣던 음악 틀어 놓고
흘러내리는 둘레 치마를 연신 치켜올리며
모래성을 쌓았다
어릴 적 보았던 짙은 노을이 지금 저기 있다
세상을 등진 가족의 얼굴을 파도가 가져갈 때까지
모래 위에 그렸다.
갈매기도 비껴가는 노을빛
바다가 오래도록 붉게 들끓는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여인의 손엔 피가 그득하여
그녀는 우주의 한쪽 끝에 발을 담그고
그 방으로 스르르 빠져들었다
오래도록 합장을 하는 듯
별들 내려와 무릎을 꿇는 듯
쓸쓸함도 아득히 사그라져가는 듯
오늘이 지고 있다.
약력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1993년 <현대시학> 소시집 발표 후 자유시 활동.
시집『나비는 비에 젖지 않는다』
『겨울기억』
『서른아홉 나연 씨』
『그 남자의 손』.
비평집 『숨김과 관능의 미학』
《시와문화》작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