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일/물고기와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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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2-01 06:05 조회3,41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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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와 산다는 것
김중일
물고기와 산다는 것에 대해 말하는 상처투성이 한 아이의 두 눈에서 물고기가 뚝뚝 떨어졌다.
물고기를 주워와 불에 구웠다.
두툼하고 부드러운 하얀 살을 뜯으며 배를 채웠다.
아이를 잃고 산다는 것에 대해 말하는 한 엄마의 두 눈에서, 한 세상이 전봇대보다 길게 뚝뚝 떨어졌다.
떨어진 세상의 표면에 달라붙은 창문이 젖은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였다.
그 세상을 떨어진 물고기처럼 주워 밤의 창문을 긁어내고 불에 구웠다.
그을린 세상으로 배를 채우고 뼈만 앙상한 세상을 깊은 밤에 풀어놓았다.
온종일 슬픔을 집어먹고 저녁이면 다시 살이 꽉 차오를 것이다.
아침에 문밖으로 나가려는데 신발 속에 가시처럼 뼈만 남은 물고기 한 마리씩 누워 있다 .
김중일(金重一) :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
『내가 살아갈 사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