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아침인줄 아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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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2-01 06:15 조회3,56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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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인줄 아는 아침
최영철
너는 벌써부터 기울고 있다
쓰러지려는 쪽 동강나려는 쪽
가라앉으려는 쪽 허기진 쪽
그 쪽을 탈출해 그 반대쪽
황급히 도피한 쪽
갑자기 느닷없이 균형을 잃곤 하는 아픈 쪽
스산한 쪽 벼랑이 끝나고 또 시작되는 쪽
절단 나고 하나도 남지 않은 쪽
일찌감치 혼자 남아 미라가 된 바닥
오두막 깊이 내려앉은 쪽
어긋난 쪽 구멍 나 벌써부터
바닷물이 턱밑까지 밀고 들어온 쪽
한 생을 걸었으나 너는 아직 다 기울지 못하고 있다
너는 더 기울어야 한다 허물어져야 한다
기울다 기울다 그 반대쪽
그 맨 나중에 쓰려져야 한다 가라앉아야 한다
그 나쁜 쪽 불끈 솟는 돌부리에 걸려
그 쪽을 향해서는 끝내 한걸음도 못 가고
땅을 치며 엎어져 원통하게 밤을 지셀
그쪽마저 쓰러져 아침이 영영 달아나버린 쪽
말라비틀어진 아침을 아침인줄 얼싸안고
잠들어 있는 쪽 눈만 말똥말똥
누가 흔들어 깨운다고 아침인줄 알고
마지막 찬스의 아침인줄 알고
또 슬며시 눈 뜨고 바라보는 저쪽
최영철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돌돌』
『금정산을 보냈다』
『찔러본다』
『호루라기』
『그림자 호수』
『일광욕하는 가구』외,
육필시선집 『엉겅퀴』,
성장소설『어중씨 이야기』,
산문집『변방의 즐거움』외.
수상 백석문학상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