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번역하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0-25 10:27 조회3,193회관련링크
본문
문화를 번역하다
김석준
문화는 한 민족의 정신의 높이를 가늠하는 절대적인 척도, 즉 정신의 지표이다. 특히 시는 그러한 문화적 요소들 중 한 민족의 정신성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예술 장르이다. 이를테면 시를 번역하는 행위는 단순하게 문자를 번역하는 행위가 아니라, 문자에 기입된 문화의 지표를 해독하는 역동적인 운동일 뿐만 아니라, 문화와 문화가 만나 새로운 지평융합이 형성되는 극적인 순간이다.
에즈라 파운드가 『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시란 민족의 정신을 대변하는 안테나라고 언명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시와 관련된 일련의 서사적 행위는 인륜성이 육화되는 최고의 형식일 뿐만 아니라, 너 또는 나를 진실의 공간으로 데려다주는 의식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시를 번역하는 일련의 행위는 숭고한 예술혼을 재현하는 문화의 최전선임에 틀림없다. 시가 세계를 번역하는 심혼의 언어라면, 시의 번역은 그 숭고한 심혼을 소통시키는 문화의 의사소통적 형식이다.
문화와 문화가 상호 결합하고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창조하게 된다. 웹 매거진 K-Poem.com의 일련의 기획은 담론의 생산력과 더불어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현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이는 21세기가 요구하는 하나의 문화적 지평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디지털 문명이 보편화된 21세기에 웹진 K-Poem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매체 양식이다.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말한 것처럼, 매체가 인식을 결정하고 삶을 지배한다. 따라서 금번에 창간하는 웹진 K-Poem.com은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문학적 구성물일 뿐만 아니라, 범세계화를 지향하는 한국 시단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시의적절한 매체 양식이라 하겠다. 더 나아가 웹진 K-Poem.com은 기존의 문학적 패러다임과 달리 영어는 물론 다양한 외국어로 번역하여 한국시를 다양한 문화권에 알리고자 하는 바람 또한 숨기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시를 쓰고 또 다양한 시적 실험들이 향해진다한들 그것을 적극적으로 소통할 방식, 즉 번역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방법이 문화의 지평을 결정하고, 또 문화와 문화 사이의 지평융합을 가능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시를 다양한 외국어로 번역하여 알리는 작업은 단순한 번역행위가 아니라, 문화를 소통시키는 중차대한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일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번역은 단순하게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정신을 소통시키는 문화의 절대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한국의 문학을 세계화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번역 문화의 정착이라 하겠다.
표면적으로 볼 때, 한국의 근대문학이 식민지시대를 거쳐 형성된 까닭에 그 역사가 일천하여 그리 주목의 대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 한국의 시단의 열기는 가히 제 2의 르네상스를 주도하는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를 통해 가장 많은 시인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전국경향 각지에서 수많은 시 전문 문예지가 출간된다는 점은 한국의 시단이 세계의 문학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구비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풍부한 저변 확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시단이 그리 큰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은 시의 질적 수준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시적 경향들을 소통 보급할 수 있는 통로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시대는 번역문학의 활성화를 원한다. 번역이 요청된다. 이제 번역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단순한 기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문화와 또 다른 문화가 결합하는 지평융합의 순간임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번역의 수준은 문화의 수준이다. 현재 한국의 시단의 역량에 비추어 볼 때, 한국시의 외국어로의 번역 작업은 그야말로 요긴한 당면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수준 높은 번역만이 한국의 시문학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번 창간한 웹 매거진 K-Poem.com은 한국의 시단의 다양한 시적 경향을 소개하는 한편,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한국의 시들을 번역해 세계에 홍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미디어의 환경이 종이에서 상호 인터페이스가 가능한 디지털 환경으로 변한 시대에 웹진 K-Poem.com은 시의적절한 예술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최적의 문학 행위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경제학적 목적은 물론 문화적 욕구까지 충족시키는 것이 가능한 스마트한 디지털 환경은 간편하게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적 징후인데, 이는 앱, 즉 컴퓨터 응용 프로그램을 통한 정신문화의 공유이다.
물론 K-Poem.com이 지향하는 시의 번역 사업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인 것 또한 분명하지만, 금번 창간호를 계기로 더 많은 시가 외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에 소개되는 호기를 맞았으면 하는 바람도 숨기지 않는다.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알리는 전령사의 역할을 하듯이, K-Poem.com의 창간을 계기로 시의 번역이 중요한 정신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1919년 동인지 『창조』에 최초의 근대 자유시로 평가받는 주요한의 「불놀이」가 발표된 이후 근 100년의 역사를 맞이한 한국의 현대시가 K-Poem.com을 통해서 만방에 알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면, 그 또한 기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국의 시가 전 세계에 위의를 떨치는 그날까지 K-Poem.com은 묵묵히 번역에 관련된 다양한 일에 매진하며, 좋은 시를 많이 발굴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김석준
시인 평론가
1964년 아산출생
학력: 고려대학교 철학과 졸업, 서울대 국문학 석사, 박사,
1999년 《시와 시학 》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
2001년 〈천상병 론〉으로 《시안》을 통해 평론가 등단
저서
2003년 평론집 『비평의 예술적 지향』(시와 시학사)
2010년 『무덤 속의 시말』(종려나무)
2011년 《미네르바》작품상
현재: 산업대학교에서 국문학 강의